18절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보충 설명:
앞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바울은 모든 일에 자족했으며 비천에도 궁핍에도 풍부에도 처할 줄 알았으며 모든 쓸 것을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것을 믿는 것만큼 넉넉한 마음이 있었다. 바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쓸 것을 얼마든지 채워주실 수 있는 분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현대 교회가 오해하는 것이 바로 이것에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으로 여긴다. 즉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권리를 인간에게 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을 교회의 하나님으로 끌어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결코 교회의 바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함으로써 교회다움이 증거 되는 것이지 교회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교회다움이 증거 되지 않는다. 이것이 세상의 종교와 다른 점이다. 하나님은 우상과 능력 다툼을 하는 분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욕심을 이루어 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미련하고 잘못된 생각에 신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은혜의 부요함을 얼마나 많이 빼앗기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욕심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우리 중심적인 생각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영광과 풍성함을 잃어버리고 무능력한 신자로 전락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다.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분이다. 이러한 풍성함을 우리의 욕심으로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신자로서의 배부름과 행복은 사라지고 모든 일에서 궁핍을 느끼고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는 결과만 남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무작정 너희 쓸 것을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쓸 것을 채우신다고 할 때 그 쓸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육체의 삶을 위해서가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바로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쓸 것을 채우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대로 하면 쓸 것에는 분명한 제한이 있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채우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았다. 비천이든 궁핍이든 고난이든 그 모든 것은 자기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보여주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바울에게는 고난도 기쁨이었고 궁핍도 감사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바울에게는 지금 주어진 모든 것이 넉넉하게 채워진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내가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보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에게 필요하신 무엇인가를 보고 계신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살피는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적용: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권리가 나에게 있는지 하나님에게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나는 기도할 때 이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에게 결정권을 두지 않고 기도하면 사실 정말 마음 편한 기도를 할 수 있다. 왜냐면 내 몫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에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욕심으로 구하면 실패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며 마음의 평강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어떤 것을 하나님이 반대로 허락하지 않으시면
" 이 문제는 허락하지 않으신 게 나에겐 유리한 것이고 최선의 방법일 거야!" 하고 결정을 한다.
잘 안되는 경우는 없었다. 순간 마음이 힘든 부분도 있지만 금방 마음의 중심을 잡게 된다. 앞으로도 이런 훈련은 계속될 것이다.
믿음 ( trust)은 살아가는 동안 완성은 없는 것 같다.
오늘은 되다가도 내일은 넘어지기도 하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이 권리의 문제를 먼저 떠 올린다면 언제 가는 쉬워질 경지가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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