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예레미야 31장 40장까지 묵상

차작가 2023. 9. 28. 11:44

오늘은 31장에서 40장까지 묵상했다.

그 중에 가장 나를 회개하게 만든 37장을 나누기로 한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사역한 시기는 혼돈과 대 격변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36장에서 여호야김 제 4년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하여 바룩에게 두루마리 책을 가져오게 해

예레미야가 말하는 것을 기록하게 한다.

그리고 그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금식일에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낭독하게 한다.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가 말씀을 듣고 왕궁에 가서 바룩이 백성들에게 낭독할 때 들은 것을 그들에게 전한다.

결국은 이 말씀을 왕이 태워버린다.

이 두루마리에는 왕의 불행한 미래가 기록되어 있다.

왕이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두루마리를 태워 버린 것이다.

37장 1절에는

37:1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이렇듯 혼란의 시기었다.

시드기야 시대에 벌어진 일들임을 1절에서 말하고 있다.

시드기야 사건을 이해하려면 다시 요시야왕의 죽음 부터 짚고 넘어 가야 한다.

요시야가 죽고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즉위하고 그 다음 여호야김 그리고 여호야긴 마지막으로 시드기야가 왕으로 즉위 한다.

여호아하스 왕은 선한 왕으로 알려진 요시야 왕의 아들이다. 요시야는 백성들의 지지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게 된다.

이렇게 남 유다의 부흥은 요시야의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요시야의 뒤를 이어 여호아하스가 즉위 할 때가 나이가 23세였고 예루살렘에서 석달간 다스리고

바로왕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하맛 땅 리블라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그의 형제 엘리야김을 세워서 유다와 예루살렘왕으로 삼고 그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한다.

여호야김은 친애굽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신흥 강국인 바벨론과 친바벨론 정책을 펴서 그의 아들 여호와긴이 8세 떄 왕이 된다.

그도 예루살렘에서 석달 간 다스리다가 폐위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간다.

그 때 성전에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들이 탈취 당한다.

이렇듯 솔로몬 시대의 영광은 종결된다.

뿐만 아니라 용사 7천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명 그리고 싸움을 잘하는 용맹스로운 자들을 바벨론왕이 함께 잡아 간다.

그러며 여호야긴의 시대가 석달 만에 끝이나고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서 시드기야라고 한다.

그러므로 결국은 요시야의 첫 째 아들 요호아하스 다음 여호야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다시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로 왕의 계보가 이어진다.

이런 고난은 결국은 2절에서 말하듯이

37:2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아서였다.

바벨론에게 포위되자 시드기야는 하나님 마음에 들면 혹시 자비를 베풀어 주실까 하는 마음에 종들을 해방한다.

즉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말씀을 이용한 것이다.

시드기야가 하나님 말씀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지키는 의도가 아니라 그의 마음에 동기는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사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종들을 해방한 것은 바베론과 전쟁에서 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계략이었다.

군사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서 경제적인 위기도 대응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종들의 반란을 두려워 한 그런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37: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그런데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자 갈대아인 즉 바벨론 군대가 일시적으로 철수 한다.

그러자 시드기야는 마음이 변하여 다시 노비들을 끌어다가 다시 노비로 삼는다.

3절을 보면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7장 16절과 11장 14절과 같이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하나님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향한 실망하는 마음을 이 구절에서 느낄 수 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중에서 너희들은 내 소유가 된다고 하셨고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잊었다.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잊은 백성은 징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징계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므로 기도하지 말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온 우주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바벨론을 도구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에게 매를 드신 것이다.

남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이 무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충실하지 않은 백성을 벌하시는 징계이다.

징계의 목적은 그들을 정화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셔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37:6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7: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37:8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37: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냉혹한 심판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난다.

37:12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37:13 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이르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 분깃을 받으려고 갔을 때 이리야라는 문지기를 만난다.

예레미야에게 반감을 가졌던 그는 예레미야가 바벨론에게 투항하러 가는 것으로 오해했다.

이유를 묻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판단해서 예레미야를 붙잡아 때리고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둔다.

지하 감옥은 곡식이나 물을 저장하려고 판 웅덩이이다.

위기 속에서도 예레미야는 자신의 말을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시드기야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 내고 그에게 비밀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묻는다.

사람을 가두는 문제에 있어서도 왕에게 보고하지 않은 고관들을 보면 왕의 권위가 무너져 있고 정세가 불안함을 엿볼 수 있다.

왕이 비밀스럽게 묻자 예레미야는 19절과 같이 대답한다.

37:19 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왕 주위에서 호의를 사려던 거짓 예언자도 사라지고 고관들은 왕을 무시하고 시드기야의 비참한 현실이 엿보인다.

왕은 왕궁의 감옥 뜰에 두고 먹을 것을 주고 그를 그곳에 안전하게 머물게 한다.

오늘 말씀을 보며 아무도 남지 않은 시드기야의 비참한 현실이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무시한 결과임을 알기에

나는 이런 어리석음이 없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고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은 말씀이나 기도를 나의 욕망을 채우는데 이용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말은 하나님을 부르지만 말씀을 또 기도를 내 욕심을 채우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이용하려는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다.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시고 만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 모든 사람들 안에는 악인들도 포함된다.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노예를 풀어주고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며

복을 구하는 목적으로 율법을 지켜왔던 모습들을 생각나게 하셨다.

마음과 생각을 감찰 하시는 하나님 앞에 깨닫게 하셨다.

극한 상황에 다다른 시드기야는 끝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끝까지 혹시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을 하나님이 바꿔주시지 않나라는 기대 뿐이었다.

비밀스럽게 예레미야를 불러서 그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레미야에게 도움을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끝까지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백성을 버리고 혼자 도망하는 것을 선택했다.

항복했더라면 어땟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고난과 또 징계를 주신다면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사하게 감당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씀이 징계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의 자세를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