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예레미야 애가 묵상

차작가 2023. 9. 29. 11:46

오늘은 예레미야 애가를 묵상했다.

애가는 "슬프다"로 번역된다.

이 단어는 1장, 2장, 4장이 시작되는 첫 단어이자 장례곡의 첫 마디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래서 애가는 슬픈 노래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예레미야로 알려져 있다.

예레미야 애가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남 유다가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며

예루살렘성이 파괴된 것을 애도하며 지은 시이다.

또한 문학적인 구성과 기교면에서 뛰어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예레미야 애가의 구성은 다섯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어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다섯 권으로 된 토라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고통의 토라"라고 불린다.

각 장이 동일하게 22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알파벳이 모두 22자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완전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3장은 66절로서 22절의 세 배이다. 그래서 슬픔의 극대화로 보인다.

그래서 3장이 중심 역할을 하며 저자가 3장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가는 하나님의 진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지만 경고로만 끝내지 않고 실제로 행하신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이다.

유다가 망한 이유는 바벨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바벨론에 대한 언급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심판의 메시지로 만 끝나지 않고 3장에 보면 회개하면 회복시켜 주실 것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애가의 가장 유명한 희망 메시지는 3장 22절에서 24절에 잘 표현되고 있다.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3: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 소이다

3: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애가는 5장 밖에 되지 않아서 읽기도 좋고 예레미야서를 이해하고 읽으면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슬픔이 시적으로 잘 표현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나누고 싶다.

1:2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1:3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이 말씀은 작년에 내가 겪었던 여러 상황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사역하면서 밤새 눈물을 흘리며 베개를 적셨던 일들을 생각나게 했다.

이 말씀을 읽다가 블로그에 기록되어 있는 10년도 지난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찾아서 읽어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에 흘렀다.

가장 힘든 순간에 어쩌면 위로를 건네는 친구도 하나 없는지......

또 궁지에 몰려 있을 때 핍박하는 자는 쉬지도 않고 나를 뒤따라 오는지.....

인생이 허망하고 무기력함을 느꼈었다.

1:14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눈물로 밤을 새울 때 분명히 내 죄로 인한 눈물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죄나 나의 죄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셔서 멍에를 내 목에 올려서 묶고 그들의 손에 하나님이 나를 넘기셨다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갔고 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로 이겨냈음을 감사드린다.

3: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돌아보니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선하시고 나의 구원자 되셨다.

하나님이 언제까지 나를 버려두시는가! 하고 통곡할 때도 있었지만 잠잠히 기다릴 때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인생이 거칠고 험난하기에 하나님은 나를 훈련시켜서 경주마가 되어 낙오되지 않고 잘 달리게 하시려고 고생하게 하셨음을 느낀다.

아직도 고생이 싫고 인생이 고달프지만 하나님은 나의 고생과 근심을 주심이 본심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니 큰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