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에스겔 1장에서 10장까지 묵상

차작가 2023. 9. 29. 11:48

에스겔서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다니엘서와 함께 대 선지서에 속한다.

같은 시대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했다면 바벨론에서는 다니엘과 에스겔이 사역을 했다.

다니엘은 궁중에서 주로 사역했고 에스겔은 백성 가운데 사역을 했다.

에스겔은 20대에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할 시점에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가게 된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어야 할 그는 바벨론에 잡혀가 강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에스겔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이다.

요시야 시대에 성전 개혁을 하고 율법책이 발견되기 1년 전에 에스겔은 태어났다.

그는 제사장 부시의 아들이며 25세에 포로로 끌려갔다.

민수기 4장 3절에 보면 제사장은 20세에서 29세까지 견습 기간을 가지고 30세에 제사장으로 등용된다.

그는 30세에 바벨론에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예레미야가 요시야에서부터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까지 사역을 했다면

다니엘은 여호야김에서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까지 사역을 감당했고

에스겔은 시드기야에서 예루살렘 멸망까지 사역을 감당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유다를 세 번에 걸쳐 침략을 하는데 1차 침략에서 다니엘이 끌려갔고(주전 605년)

2차 침략은 주전 597년 유다왕 여호야김과 권세 있는 사람들과 지도자들과 용사 만 명을 끌고 갈 때 에스겔이 함께 끌려간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사역한 시기는 아직 3차 침략이 이뤄지지 않은 시기이다.

에스겔은 그 후 11년이 자나서야 고국의 멸망 소식을 듣게 된다.

에스겔은 유다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에 포로로 끌려가서 유대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격려하며 강하게 한 그의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에스겔서는 유일하게 책 전체가 1인칭으로 기록된 예언서이다.

그리고 연대 기록이 아주 정확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13번에 걸쳐 정확한 날짜와 달 그리고 연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주전 593년에 첫 말씀을 선포하고 주전 570년에 마지막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주전 586년) 이루어진 그 때로부터 메시지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이 망하기 전에는 유다의 불순종을 지적하고 예루살렘에 임한 심판과 경고를 하며 회개를 촉구한다.

그뿐만 아니라 평화와 축복을 선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따르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망한 후에는 그는 희망과 위로의 말을 전한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될 것을 예언한다.

환상을 통해 새로운 성전과 예루살렘 성읍의 회복을 보여준다.

그 성읍의 이름은 "주님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뜻의 "여호와 삼마"이다.

에스겔서에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라는 표현이 60번 이상 나온다.

그리고 언약을 지키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부르실 때 "인자"로 부르심이 90번 이상 사용된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인자로 부르신 이유는 에스겔이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인간임을 상기시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에스겔서는 구약 묵시문학의 큰 공헌을 한다.

신비한 환상적 체험 영의 이끌린 여행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고 돌아오는 장면들 종말론적 주제와 조화를 이룬

독특한 상징들 해석과 예언이 곁들어진 역사의 상징적 의미 등으로 후기 유대 묵시 문학의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포도나무 독수리들 암사자들 오홀라와 오홀리바 가마솥 등 수많은 알레고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상징적 행동으로도 유명하다.

예를 들어 아내가 죽었으나 애곡하지 않거나 390일은 왼쪽으로 눕고 40일은 오른쪽으로 눕거나 머리를 밀어 저울에 달아 놓거나

행장을 메고 어두운 벽을 뚫고 나가는 등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몸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마치 충격 요법을 사용해 죽을 병에 환자에게 해독제를 주는 것처럼 자신의 독특한 삶과 행동을 통해 마음이 굳은 유다 민족이

메시지에 귀 기울이도록 최선을 다한다.

에스겔서는 신약의 직간접적으로 60회 이상 인용되며 대부분 계시록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장엄한 환상으로 시작해서 새마음과 새 영을 주는 새 언약의 약속을 비롯해 새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환상까지

에스겔은 영적 세계로 인도한다.

에스겔서의 개관은 성경 에센스 김윤희 교수의 에스겔 편에서 참조했다. 꼭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오늘은 이 어려운 말씀을 1장에서 10장까지 묵상했다.

1장에서 하나님이 에스겔을 서른 살이 되는 해에 그발 강가에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를 선지자로 세우신다.

그때가 여호야김왕이 포로로 잡혀 온 지 5년이 되던 해 그달 초 닷새라고 적혀있다.

에스겔은 이렇게 연도나 시간이나 달 월 같은 것을 아주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복잡한 환상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내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그것은 믿기 어려운 이 환상이 정확하다는 것을 또 자신이 분명히 봤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라는 인상이 들었다.

우리가 꿈을 꾸면 잠에서 깨면 금방 꾼 꿈도 기억하기 힘든데 이렇게 색깔이나 모양이나 움직임 등을 자세히 기록한다는 것은

사진처럼 마음에 박히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말씀이 에스겔이 경험했다는 확신이 일단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라는 마음으로 접근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는 장면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패역한 내 백성 나를 배반한"과 "그들이 듣지 아니한"라는 말이었다.

패역까지는 아닐 수도 있는데 듣지 않는 것에 있어서는 나를 봐도 나에게 하는 말씀인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5절에 보면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이 말은 우리 부모님이 자주 자식들에게 하는 말과 똑같다.

이 심각한 말씀이 나를 웃게 했다.

하나님은 포기를 하셨지만 선지자들을 그래도 보내주셨다.

그리고 7절에서도 "듣든지 아니 듣든지 내 말로 고할지니라"

여기서도 슬프지만 너무 웃겼다.

그런데 이 말씀이 하나님은 정말 내 아버지시구나라는 확신이 왔다.

이 속에는 포기한 마음도 있지만 기대하는 마음도 있음을 눈치챘다.

8절과 9절에 보면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나는 에스겔처럼 말씀을 너무나 간절히 먹고 싶다.

그 안에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비록 이런 고난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이면 맛있게 먹어서 소화해 내고 싶다.

그리고 에스겔은 이 말씀을 먹는다.

그 말씀은 에스겔의 배에 들어가 창자를 채우고 그리고 그것은 입을 채우고 꿀같이 달아진다.

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슬픔이고 재앙일지라도 그것을 감사함으로 먹으면 창자를 채운다고 말하고 있다.

이 창자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뜻한다.

하나님 말씀은 모두 축복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꿀 송이처럼 달게 느껴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 한 번 나를 웃기신다.

3: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3: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3: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하나님이 말을 하자면 "네가 영어 못하는 거 잘 안다 그래서 한국말로 이야기해 줄게!

너 머리 나쁜 것 안다 그러니까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줄게"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너희 수준에 맞추어서 말을 했는데도 듣지 않는구나

내가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말로 이 말을 했더라도 그들은 다 알아 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이 상황에도 유머러스하게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얼마나 기가 차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똑같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려운 영어로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못 알아듣게 말씀하시는 것도 아닌데

참.... 순종하지도 않고 알아들었으면서도 못 알아들은척할 때도 많고

입속에 집어넣어 줘도 그것을 소화 못해서 창자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토해 낼 때도 많다.

배에서 토해내니 음식물이 창자에서 영양분이 흡수되는데 마음이 자랄 수도 없고 또 토하면 입이 쓰다.

그러다 보니 말씀의 단맛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10절에서 에스겔에게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고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다"라고 전하라 한다.

결국은 하나님 말씀을 바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에스겔 하나뿐인데 나머지 사람들은 안 듣는다는 뜻이다.

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옳은 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지 않나 하는 회개를 했다.

에스겔이 선지자로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들을 맘이 없는 사람들에게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14절에 보면 에스겔이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하나님의 권능이 힘 있게 에스겔을 감동시킨다는 표현이 있다.

이 험난한 사역을 해야 되기는 한데 근심이 가득한 에스겔을 생가해 보았다.

에스겔이 감당할 수 있었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힘이었다.

이 말씀을 보며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감동을 주시고 힘을 주셔서 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이 들자 조금 자유로운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안될 때는 도움을 간구해야 됨을 알게 하셨다.

지금도 불가능 앞에 서 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