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하면 성전 재건이 생각이 난다.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많은 선지자(에스라 스가랴 학개 ) 들이 함께 힘을 모아
무너진 성전을 재건해 영적 부흥기를 이루었다.
이런 걸 보면 영적인 부흥은 하나님이 특별한 시대에 특별히 부어주시는 것 같다.
느헤미야는 또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대신 회개하며
자신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예루살렘을 향해 눈물 흘리며 회개한 사람이다.
항상 아는 말씀이지만 느헤미야와 같은 마음이 없는 나를 돌아보며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다는 도전을 주는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
1: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1: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1: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 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 하여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환난이 미치고 성전은 불타고 성벽은 무너진 소식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한다.
느헤미야는 옛 선조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복하고 회개하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나는 할 수 없는 이 회개를 느헤미야가 할 수 있었던 건 사람의 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택하셔서 그 민족의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성전을 재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는 것에
느헤미야를 사용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느헤미야의 삶 속에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율법을 지키며 늘 하나님 안에 서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느헤미야를 찾아와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고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누군가의 죄를 대신해서 목숨을 내 놓는다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닥사스다 왕 앞에 감히 얼굴에 근심을 비추는 것은 목숨을 내놓을 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필요한 예배자의 태도이고 내가 간구해야 될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웃나라들의 전쟁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나는 과연 이런 갈급한 마음으로 기도하느냐라고 질문을 한다면 전혀 그런 마음이 없다.
그저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전쟁을 종식 시켜 달라는 기도는 매일 하지만
그들이 죄를 나의 것으로 동일시하진 않는다.
이 구절을 읽으며 항상 내가 없는 마음을 느헤미야가 가졌다는 것에 존경심을 가지게 되고
어쩌면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보여 주시는 게 우리에게 가져야 될 마음이
이런 마음임을 알려 주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6절을 한참 보게 되었다.
지금은 안되지만 입술로나마 이 구절을 적용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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