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말라기 묵상

차작가 2023. 10. 2. 12:52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포로기 이후 페르시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선 지서이다.

말라기의 정확한 연대는 나와있지는 않지만 학개의 사역으로 성전이 완성된 후에 쓰인 것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성전에 관련된 메시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말라기는 주전 450년에서 400년 사이에 활동한 예언자라고 추정하기도 하고 그 이전인 500에서 475년으로 보기도 한다.

말라기는 외부인과의 통혼 문제, 이혼 문제, 제사장직의 남용 문제, 성전 봉사 문제, 십일조 문제 등을 다루는 점에서

에스라, 느헤미야서 등과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에스라, 느헤미야와 비슷한 시대의 사람이라고 보기도 한다.

말라기 이름은 "나의 사자"라는 뜻이 있지만 어떤 학자들은 말라기가 선지자의 이름이 아니라

말라기 3장 1절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에서 보고 이 책을 익명의 예언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시 예루살렘은 페르시아의 거대한 제국 내에서 조공을 바치는 지방으로 남아있었다.

과거 이스라엘의 영광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 왕국의 도래는 오지 않았으므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백성들은 언약의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낙심하며 불신의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선민사상은 희미해져갔고 하나님의 사랑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 말라기서이다.

이것은 마지막 경고였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말라기와 같은 선지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말라기를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침묵이 시작된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그들은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죽은 후에 성령이 이스라엘을 떠났다고 믿었다.

그러기에 말라기를 통해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메시지를 듣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말라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라는 것이다.

그분은 위대한 왕이시며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말라기 전체는 서론, 여섯 번의 논쟁, 마지막 경고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 여섯 번의 논쟁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반문하며 하나님이 다시 그들에게 답변하는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쟁론과 질문을 통해 대화하는 형식은 말라기의 독특한 문학 기법일 뿐 아니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이러한 수사학적 질의응답 형식은 후기 랍비 학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강해 교육의 선구로 평가된다.

말라기의 메시지의 핵심은 포로기 이후에 귀환한 백성들의 영적인 삶과 그들의 생활 속의 부패를 지적하며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격려하는 것이다.

이 또한 하나님은 결코 악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심판할 것임을 알려 준다.

마지막 심판 때에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고 의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을 경고한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그분의 사랑은 결코 변치 않을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심을 말하고 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변해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말라기를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성경 에센스 말라기 편 김윤희 교수 참조)

말라기서는 4장으로 되어 있는 짧은 책이다.

그중에 2장을 나누고 싶다.

2장에는 제사장들에 대한 명령과 경고가 쓰여 있고 또 거짓을 향하는 백성들을 향한 메시지도 함께 쓰여 있다.

그중에 3절에 보면

2: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여기서 "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한다.

번제를 드릴 때에 제물을 죽여서 제물의 각을 뜰 때 희생제물의 내장이나 똥은 바깥에 버리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 똥을 제사장의 얼굴에 바를 것이라는 표현은 제사장의 영적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4절에서 9절까지 잘 설명하고 있다.

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2: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2:6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2: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2: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2:9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항상 지키고 함께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심판을 통해 그들에게 깨닫길 원하셨다.

레위인과 세운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인데 이것을 그들에게 세우신 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움으로 섬기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불의를 행하고 하나님과 화평함도 없었고 정직하게 행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백성들을 진리의 법에서 돌이켜 죄악을 행하게 했다.

백성들은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율법을 거슬러 옳은 길에서 떠났으므로 스스로 언약을 깨트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것이다.

12절에 보면

2:12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깨는 자란 제사장을 뜻하고 응답하는 자는 백성들을 말한다.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 즉 제사장이나 백성들을 차별 없이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2: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이 당시 이방인들은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죽었던 곡물의 신을 애도하는 관습이 있었다.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라는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제의 관습을 따랐음을 볼 수 있다.

현시대에 찬양 인도자나 대표 기도하는 직분 자나 목사가 설교를 할 때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려는 목적으로

마치 연기자처럼 눈물로 호소하는 광경을 볼 때가 있다.

그런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의 기도나 봉헌 물이나 찬양이나 설교를 돌아보지도 않으시고 받지도 않으심을 말씀하고 있다.

 

그들의 삶이 거룩해야 한다.

연기를 통해 눈물 흘리는 그들의 어떠한 기도도 말씀도 하나님은 마치 "너 뭐 하냐? 연기하냐?"라고 말씀하는 것과 같다.

그들의 삶에는 거룩함이 없고 단지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은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아모스 5장 21절에서 24절을 통해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거짓된 것을 미워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들의 삶 속에서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하길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삶이다.

눈물로 연기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길뿐이다.

제사장, 목회자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현존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서서 사역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케 하고

사람을 위한 말씀을 선포하고 그들의 삶 속에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옳은 길에서 떠나게 만들고 정직하지 않고 화평을 깨는 삶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얼굴에 똥을 발라 부정한 자로 취급하여 바깥에 버림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목회자 뿐만 아니라 믿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임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

언제나 우리는 현존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일의 말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복음 5장에서 10장 묵상  (0) 2023.10.03
마태복음 1장에서 4장 묵상  (0) 2023.10.03
스가랴 1장에서 8장 묵상  (0) 2023.10.02
학개서 묵상  (0) 2023.10.02
스바냐 묵상  (0) 202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