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가 원래는 하나의 책이었다고 한다.
읽어보면 내용이 이어져 가는 걸 알 수 있다.
에스라는 율법학자이며 제사장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일방 인이자 정치가이다.
두 사람은 성벽 재건이라는 공통적인 목적을 위해 쓰임 받은 사람이다.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사역 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충성되게 임하는 자세가 무척 은혜가 되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성격도 정반대였다.
에스라는 기도하며 제사장으로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치는 분이지만 계획적인 면보다는
은혜 충만한 대범한 스타일이며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흔히 우리가 하는 말로는 막무가내 같기도 하고 한 성격하시는 분 같았다.
반면에 느헤미야는 계획적이고 조심성이 많고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는 정치가적인 면이 많이 보였다.
한마디로 에스라는 은혜 충만으로 밀고 나가는 목회자 같고
느헤미야는 계획을 가지고 소신 있게 일을 처리하는 전략가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느헤미야의 이런 성품을 하나님은 무너진 성벽을 쌓고 불타버린 성문을 만들고
성벽의 각 문들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재건할 것인지 또 필요한 경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해 계획성 있게 전략을 짜고
리더 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배치하는 인사에 능한 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성향의 사람도 하나님이 완벽하게 만드신 피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8장까지 묵상하며
느헤미야 하면 가장 중요한 "하나님께 묵도하고" 이 말씀을 나누고 싶다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가 수심이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자 왕이 이유를 묻는다.
왕 앞에서 수심에 찬 얼굴을 한걸 들킨다는 건 신하로서 무례한 행위로서 관직을 박탈당할 수도 있는 이유가 되는 죄였다.
그러나 왕에게 신임을 많이 받은 느레미야는 왕에게 은혜를 입어 그 이유를 아뢸 수 있었다.
그리고 왕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와 같이 잠시 기도하는 느헤미야를 볼 수 있다.
2:5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기도하고 난 뒤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건축하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한다.
그리고 얼마나 이 문제를 고민하고 생각했는지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과 갈 때 필요한 통과 조서까지 자세히 설명하는 느헤미야를 발견할 수 있다.
기도뿐만 아니라 계획적으로 이 일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마치 PPT를 보여 주는 것처럼 일사천리 하게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한다."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성벽을 둘러보고 불탄 성문도 둘러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을 모으고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라고 백성들에게 말한다.
혼자 조용히 밤에 나가서 둘러보고 왔기에 현실을 알고 있었고 백성들에게 설득력 있게 접근할 수 이 있었던 것이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뛰는 리더의 모습이 백성들을 감동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한다.
2: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느헤미야는 포로 기간 동안 태어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성벽이 무너짐을 듣고 수일 동안 슬퍼하고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왕 앞에 섰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고국 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진심을 전하는 건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리더로 선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 묵시하고"부터 시작됐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손이 도우심을 그는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가진 리더십의 힘이었다.
그는 계획적인 사람이고 권력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왕의 신임을 받는 정치가였다.
똑똑한 머리로 계획적으로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신다면 그를 사용해서 성벽을 재건하실 수 있다.
그러나 기도는 그가 "하나님의 손이 도우심으로"라는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만든 매개체였다.
나는 이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
기도 하지 않는다고 죽는 건 아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산다는 건 문제를 하나님이 어떻게 해결해 주시는지..
나의 삶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는지 깨닫는 은혜를 발견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느헤미야처럼 계획적이지도 않고 전략가적인 모습이 많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손이 도우심을 발견하고 고백하는 모습은 꼭 실천하고 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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