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1 - 에스라 1장에서 3장 묵상

차작가 2023. 9. 30. 15:12

드디어 에스라 편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온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430년 살다가 광야에서 40년 살고 난 뒤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제대로 된 국가를 이룬다.

그리고 솔로몬이 죽고 난 다음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져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난 뒤 70년 포로 기간을 보내고 드디어 자신의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바벨론이 내분으로 힘이 약해지고 페르시아가 메대를 장악하며 페르시아의 시대가 시작된다. 

이 모든 말씀은 다니엘서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1장 1절에서 "바사 왕 고레스"라고 소개되는데 이 바사는 페르시아를 뜻한다.

예전에도 한번 나누었듯이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으로 잡혀갔던 한국의 왕족과 백성들이

1장 5절부터 소개되듯 돌아온다고 생각하며 읽으면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우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포로기 이후에는 우상 숭배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상숭배의 죄를 짓던 그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은 포로 기간을 통해 회당문화가 시작되었고 성전 중심에서 회당 중으로 가는 변화를 가져왔다.

신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명만 모이면 반드시 회당이 생겼고 그곳에서 율법을 가르쳤다.

그 시작이 포로기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우상숭배를 하나님이 미워하셨고 그 결과로

그들이 포로가 되어 타국에서 노예로 사는 벌을 받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군대에서 말하면 "군기가 바짝 잡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철저히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2: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2:60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2:61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2:62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2:63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카운트할 때

59절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속한 가문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제사장 중에서도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었다.

이 사람들은 계보에서도 찾지 못했으므로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 직분을 못 하게 했고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들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고 명령한다.

나도 제사장 족보가 자세히 적혀 있는 도표로 찾아봤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림과 둠빔은 대제사장 가슴에 있는 것인데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 OX 큐즈 표처럼 생긴 것인데.. 진실과 거짓을 판결하는 표와 같은 것이다.

정말 누구나 봐도 올바르게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사자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고 백성들이 봐도 합당한 판결이다.

물론 하나님께 맡기는 판결이라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판결이었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이 현 교회와 각 교파의 노회가 배워야 되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았던 이스라엘은 포로의 삶을 통해 제 나라를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그들이 배운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었고 그 순종을 위해선 어떤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제사장 직분은 한점의 오점도 남겨서는 안되는 영역이었다.

제사장이 무너지면 하나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었다.

당시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가 되는 신정 시대였다.

종교가 무너지면 끝인 것이다.

우리는 이 중요성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만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쉽게 타협하는 것이 마치 은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게 좋은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