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발람의 저주 사건이 22장에서부터 시작된다.
발람은 정말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동안 성경을 읽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에서야 발람의 모습 속에 나의 모습이 많이 녹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동쪽을 점령하고 아르논에서 얍복까지 점령하는 사건이 있다.
아모리인도 몰아내고 바산 땅까지 점령하는 사건을 통해 그 주변에 있는 여러 나라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이 화제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그 소문을 듣고 모압왕은 많이 번민하고 두려워했다.
22: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22: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모압왕이 보기에는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혀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 소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두렵고 강한 존재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자신이 그런 존재임을 알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본인은 본인이 어떤 존재임을 모르고 살 때가 많다 마치 나처럼..
말로는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고 나는 하나님의 군사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하나님은 뒤로 빠지고 나약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교만도 하나님 앞에 죄이지만 지나친 겸손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믿음 없음이다.
이것은 더 큰 문제이다.
나는 이런 부분이 늘 가시처럼 박혀서 찌를 때가 많이 있다.
특히 낯선 이 땅에 살아가며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우리가 "지면에 덮여 맞은편에 거주하는 강한 백성"인 것을 까먹을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발락 왕은 발람에 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고 복채까지 준비했다.
군사는 군사로 대응해야 되는데 모압왕과 그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함으로 지길 뻔한 싸움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강한 군사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길 수 없으나 그들을 저주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그들의 방식으로 영적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믿지 않는 그들에게도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사람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아는데
이스라엘 백성과 나는 그 사실을 까먹을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발람이 돈을 보고 저주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하나님은 몰아가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2: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돈에 마음을 뺏겨 거짓 예언을 하는 발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어 나귀의 눈과 귀를 열어 주셔서
결국은 발락의 저주를 막으셨다.
발람이 저주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저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축복과 저주도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써 나귀를 사용하셔서라도 발람에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여 주시는 것은 발람에게도 기회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발람의 마음에 "내 앞에서 내 길이 사악함으로 내가 너를 막음으로 나왔더니"라고 말씀하신다.
결국은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했고 또 발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후에 죽음을 당한다.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 말씀은 너무나 은혜가 넘친다.
23:20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23:21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불순종하고 사악한 행동을 한 것은 발람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고 반역도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돌이키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다.
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나도 발람처럼 사악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심지어 중보기도를 하면서도 내 사사로운 감정이 들어가서 내가 하는 축복도 아닌데도
가끔은 어떤 사람을 향해서는 기도하기 싫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이 기도를 들어 주시는 분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신데 왜 나는 이 기도 시간마저 죄를 지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의지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내어 놓을 때가 자주 있다.
하나님이 만약 나와 같은 마음으로 구원에 관하여 또 기도에 관하여 행하신다면
나는 아마도 구원받지도 못했을 것이고 응답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발람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도 하나님 앞에 사악했고 그럴 때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를 막으심에 감사드린다.
죄를 깨달을 때에 나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고 나의 반역을 보지 않으시고 나의 사악함을 보지 않으시고
내게 주신 복을 돌이키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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