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누가복음 1장에서 3장 묵상

차작가 2023. 10. 6. 12:31

그동안 "매일의 묵상"을 나눌 수 없었던 것은 달라스로 이사 와서 인터넷 연결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어제 인터넷이 연결되어 "매일의 묵상"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누가복음 1장에서 3장을 묵상했다.

누가복음을 들어가기 전에 누가복음에 대한 개관을 하고자 한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누가이다.

누가는 헬라어 이름으로 저자 누가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기독교인"이다.

누가는 복음서를 기술하는데 높은 헬라어를 보아 상당한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누가복음은 모든 복음서 중 가장 포괄적이며 분량도 신약에서 가장 많으며 또 다른 저서인 사도행전까지 더하면

신약의 1/4에 해당되므로 누가는 신약에서 중요한 저자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꼭 그가 이방인이라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누가복음의 가장 큰 특징은 복음의 보편성이라 말할 수 있다.

누가복음은 서두에 나오는 데오빌로처럼 기독교에 우호적인 이방인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복음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 예언의 성취로 제시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사와 세상의 역사를 연결시킴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부각시키며 전개된다.

예를 들어, 1장 5절에 "유다 왕 헤롯 때에" 2장 1절에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3장 1절에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등에

표현을 보면 세속적 역사와 연결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할 때에도 마태복음 1장에 나오듯 아브라함에 귀결시키기보다는 아담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과 궁극적으로 연결 시킴으로써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보편성을 잘 담고 있다.

누가복음의 보편성은 유대인과 대조되는 개념인 이방인을 포함시키는데 머물지 않는다.

죄지은 여인, 선한 사마리아인, 탕자, 세리 삭개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 등 사회적 소외 계층을 모두 포함한다.

당시 남성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여성들이 특히 부각되어 있는 것들이 보편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리아, 엘리사벳, 안나등은 물론 7장의 나인성 과부, 8장에서 경제적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긴 여인들,

10장에서 만나는 마리와와 마르다 등 수많은 여인들이 중심이 되어

당시 사회적인 약자였던 여성을 향한 저자의 유별난 관심을 아낌없이 보여 주고 있다.

다른 복음서와 비교했을 때 누가복음은 세 가지 큰 특징이 있다.

첫째,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둘째, 성령의 역사가 강조된 측면

셋 째,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강조 등이다.

이러한 의도는 누가복음이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함이라고 끝나는 것을 보면 잘 드러난다.

마지막 부분은 누가의 두 번째 저서인 사도행전의 시작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누가는 기도와 성령과 하나님을 만나는 상징적인 장소인 성전을 강조한다.

누가복음을 통해 우리의 기도생활과 성령의 역사하심과 하나님과의 교제와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성경 에센스 누가복음 김윤희 교수 참조)

1장에서 3장을 묵상하며 그중에 1장에 대해서 나누고 싶다.

1장 1절에서 4절까지는 누가가 누구에게 왜 이 복음서를 쓰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의 사역을 처음부터 목격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저술한 사람들이 많지만 데오빌로에게 누가가 그 모든 일들을 자세히 살핀 대로 써 보내기 위해서 썼고 그것은 데오빌로에게 더 확실히 자신이 알고 있는바를 알려 주기 위해서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말씀은 다른 서신서에는 생략되어 있는 세례요한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서술하고 있다.

마치 구약의 한나가 자식이 없어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만약 하나님이 자신에게 아들을 허락하신다면

그 아들을 나실인으로 드리고자 소원했던 것을 연상하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사장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인 엘리사벳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

말라기가 끝나고 신약과 구약의 중간기인 400여 년의 기간에 침묵기를 즉 어둠의 시기 동안 사무엘이 태어나기 전과 같은

하나님의 침묵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여전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던 의인이 있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이 어둠의 시기 동안 잉태하지 못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셨다.

그때는 유대 왕 헤롯이 통치하던 시대였다.

유대 왕 헤롯의 통치 시절은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의 기록에 따르면 어둡고 암울한 시대를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5절에 유대 왕 헤롯 때에는 역사적으로 암울했을 때에 아비야의 반열의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헤롯은 에돔(이두메) 출신으로 팔레스타인과 그 인접 지역을 통치한 헤롯가의 속한 자들을 일컫는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통 유대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헤롯왕은 인정받고 싶어서 유대인들의 성전을 지어 줄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로마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의 1/4의 토지를 준비함으로 성전을 건축한다.

여기에 사가랴라는 사람은 역대상 24장 10절에 보면 "일곱째는 학고스요 여덟째는 아비야요"

여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누가복음 1장 8,9절에서 "반차, 반열에 따라"라는 말은 차례 순서에 따라라는 말로 그 당시 제사장의 직분을 맡은 자의 무리를 설명하는 용어이다.

그 당시 24반차가 존재했다.

세례 요한 시절에 제사장 들은 여리고에 주로 모여 살고 있었다.

당시 한 반차가 대략 천명 정도 되었는데 24반 차까지 있었으니 최소한 제사장이 2만 명이 넘었었다.

한번 제사할 때 두 명 정도가 섬겼으므로 제사장 천명 중 2명으로 제사를 드렸다면 확률은 500 대 1 정도가 되었다.

즉, 평생 제비에 뽑힐 확률이 매우 낮았고 심지어 한 번도 제사를 드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사가랴의 뜻은 "주께서 언약을 기억하신다"이다.

엘리사벳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하면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신다"이다.

즉 세례 요한의 탄생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결과인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6개월 전에 제비에 뽑혀 제사를 섬기게 된 사가랴.

이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신실하신 계획을 통해 세례요한은 태어났음을 볼 수 있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성령 충만함을 받았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16절 말씀대로 하나님은 그 신실하신 계획을 이루셨다.

1: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나는 1장에서 나오는 "목격자" , "말씀에 일꾼 된 자", "나"(누가), "데오빌로", "사가랴", "엘리사벳" 이런 인물의 등장 자체가 은혜였다.

400년의 침묵기를 지나갔지만 그 시기에도 하나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같은 의인을 통해

그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지키게 인도하셨고 간절히 예수님의 초림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남겨두셨으며

또 예수님의 사역을 처음부터 목격한 사람들의 말을 전하여 준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 말씀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2장에 나오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으며 항상 성령이 그 위에 계시는 사람이었다.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던 그는 이러한 고백을 드린다.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또 안나라는 여인은 아셀 지파였는데 그녀는 과부가 된 이후로 평생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던 선지자였다.

그녀는 아기 예수님을 보자 이렇게 고백한다.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아기 예수를 보여 주셨고 또 세례 요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을 이루셨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이처럼 간절히 바라는지.... 또한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지 내 삶을 돌아보게 하셨다.

말씀의 일꾼 된 자 처음부터 목격자인 사람은 바로 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마음으로 내가 글을 쓰는지 묵상을 하는지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만난 예수님을 더 확실하게 전하고자 하는 그 열정이 나에게는 있는지 깊이 묵상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