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달라스로 이사 가는 중이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여행도 하며 가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원래 계획대로는 가는 차 속에서 마가복음 강해 설교를 하루에 15강의는 들으려고 했는데
문제는 차 속의 소음이 너무 커서 볼륨을 최고로 높여도 설교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휴게소에서 쉴 때나 중간중간 초롱이를 산책 시킬 때 숙소에 머무를 때만 듣다 보니 오히려 집에서 보다 훨씬 더 못 듣게 되었다.
아쉽지만 호텔에 들어오면 집중해서 성경 읽기와 묵상을 하고 기도하며 달라스로 이사를 가고 있다.
지금까지 3일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오늘은 4장에서 10장을 묵상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토요일과 주일에 이 말씀만 반복해서 묵상하고 있다.
그중에 5장에 나오는 혈우병 여인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 이야기이다.
마가복음은 마치 쪽복음을 써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누기 위한 용도로 쓰인 것과 같은 긴박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치 샌드위치와 같이 야이로의 딸 스토리 중간에 혈루병을 12년간 앓던 여인의 이야기가 끼워져 있다.
마가복음 5장 21절에서 24절 까지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 이야기가 전개되고
중간에 5장 25절에서 34절까지는 혈루병을 앓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가 중간에 삽입이 되어있다.
그리고 다시 5장 35절에서 43절까지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 이야기로 마치고 있다.
이렇듯 중간에 혈루병 여인 이야기가 야이로의 딸 이야기 사이에 삽입이 되어있어서 샌드위치 구조라고 한다.
샌드위치의 맛을 내는 것은 빵과 빵 사이에 무엇이 끼워져 있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이야기가 바로 마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야이로"라는 뜻은 "그가 고친다, 살린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성인의 기준은 12살부터이다.
자신의 이름의 뜻이 "그가 고친다"인 야이로이지만 회당장인 야이로는 그의 딸을 고칠 수가 없었다.
성경에서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있는데 예를 들어 3이나 7 같은 것은 완전수라고 본다.
또 다른 완전수는 12지파나 12제자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리고 오늘 나오는 야이로의 딸 12살,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12년을 앓았으므로는 완전수이다.
여기서는 12라는 숫자가 암시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12살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야이로의 딸이 죽어가는 것은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죽어가는 상태라는 것을 상징한다.
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회당장 야이로는 어린 딸이 죽게 되자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곡히 구한다.
그의 집에 예수님이 오셔서 죽어가는 딸 위에 손을 얹어 살려 주시기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큰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서 예수님은 함께 갈 수가 없었다.
그때 12년 동안 혈우증을 앓고 있던 한 여자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 큰 무리 가운데 끼여 예수님의 뒤로 와 소 그의 옷자락을 만지게 된다.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 일러라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율법에는 유출 병이 있을 경우에는 부정하다고 생각해서 유출 병이 있는 사람의 옷이나 침상을 만져서도 안되고
유출 병 환자가 손을 대는 것도 부정하다고 했다.
그래서 유출 병이 있는 여인은 이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허비했지만 병은 더 중하여졌고
그녀는 가족에게도 공동체에게도 소외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그 여인은 자신의 손을 예수님의 옷에 댄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자신이 부정하므로 많은 무리 가운데 끼여 있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도 부정을 전가하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면 예수님이 부정해지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고침 받지 못한다면
예수님에게도 부정을 옮기게 되므로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 여인의 마음은 믿음이 있었다.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런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그 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확신은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즉 병이 나았다.
이 여인은 옷을 만질 때만 해도 예수님이 단지 병을 고치는 기적만을 행하는 분이라는 사실만 알았다.
그런 그 여인은 병뿐만 아니라 구원까지 받게 된 것이다.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그 여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그의 옷을 만진다든지 몸을 부딪치는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큰 무리가 에워싸서 미는 상황 속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처음엔 마치 미신처럼 붙잡았던 그 옷자락이었지만 예수님이 그 여인을 찾으심으로 그 여인의 인생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병을 고침 받는 것 분만 아니라 구원까지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축복의 말씀을 하신다.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가는 상태는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죽어가는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회당장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오던 여인이 고침을 받는 것을 목격했다.
공교롭게도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고침을 받던 순간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그의 딸의 죽음을 알린다.
그 때 예수님이 이미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즉, 혈우증을 앓았던 여인이 "그의 옷에만 손에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생각을 한 것처럼
"야이로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면 네 딸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이 의미는 불러냄을 입은 자이다.
예수님에 의해 불러냄을 받은 여인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러냄을 입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여인과 같이 어둠의 권세에서 불러냄을 입어 거룩한 무리로 인침을 받은 자들이다.
5: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여기서 "사실"은 진리를 뜻한다.
여인이 자신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진리를 여쭙는다는 의미이다.
단지 병 고침 기적만을 바라며 잡았던 옷자락으로 시작된 믿음은 예수님께 진리의 일을 묻게 만든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며 무리 속네 있던 야이로에게 딸은 죽은 게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그 소녀에게 가셔서 "달리다굼" 즉 "작은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신다.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영적으로 죽어 있던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달리다굼은 그 당시 교회에서만 통용되던 말이었다.
현대에서 예를 들면 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치유의 광선이 나타나시길"이런 표현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의미는 다르다. 믿는 사람들은 이 의미를 알기 때문에 이 예를 든 것이다.
소녀가 일어나자 예수님은 "먹을 것을 주라"라고 하신다.
이 먹을 것을 주는 것은 교회 공동체에 말씀하시는 것이다.
6: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오병이어 사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이것은 교회의 사명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죽었던 딸이 일어났을 때
본질에 충성되게 우리가 무엇을 감당해야 되는지를 깨닫게 되어서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교회이다.
내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 스스로 말씀 앞에 나아가 나에게 하나님 말씀을 먹이는 것에 게으르지 않아야 됨을 알게 하셨고
또 교회 공동체가 말씀을 나누는 것에 충성된 사명을 감당해야 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셨다.
(CBS 성서학당 마가복음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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