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베드로 전서 묵상

차작가 2023. 10. 12. 11:15

베드로 전서의 저자인 사도 베드로는 바벨론에서 이 서신을 썼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등장하고 그 당시 폐허였던 느부갓네살 제국 이전 수도인 바벨론을 말한 것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과연 어디를 의미하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신약의 다른 곳에서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서 마가가 로마에 있었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베드로가 마가와 함께 있었다고 말하므로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바벨론"은 "로마를 가리키는 암호" 같은 이름이었다고

유추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또한 종말론적으로도 바벨론은 믿는 자들을 탄압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서신의 수신자들은 터키에 속한 타우르스 산 북쪽 다섯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다.

"흩어진"이라는 헬라어 단어에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나왔으며 당시에는 예루살렘 밖에 사는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단어는 베드로 서신에서 "천국을 떠나 사는 모든 믿는 자들"을 은유적으로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서신의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박해를 받고 있었으며 네로 황제 때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단지 바울의 순교를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네로 박해 바로 전인 주후 64년에서 65년 전에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어려움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며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며 그렇게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서신을 쓴 것이다.

베드로는 올바른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영광의 관점으로 현재 당하는 고난을 생각해 보라고 권면한다.

영원에 비한다면 이 세상의 고난은 "잠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셨기에 우리도 그의 고난을 생각하며 이겨 나가야 한다는 핵심적인 진리에 근거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하나님을 위해 살면서 당하게 되는 고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다가오는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그 기간은 잠깐이라고 가르친다.

사도 베드로는 구약 속 하나님의 백성들과 현재 교인들과의 유사성을 부각시킨다.

이스라엘과 같이 교회도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거룩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핍박과 고난을 받는 것은 악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난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여정의 일부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이 경험했던 삶은 구약과 신약을 성경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현재 기독교인들의 상황과 유사하다.

하나님의 백성은 의를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살았던 요셉이나 바벨론에 살았던 다니엘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신의 수신자들은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부분이 더욱더 우리에게 와닿는다.

(성경 에센스 베드로 전서 편 김윤희 교수 참조)

오늘은 1장을 나누고 싶다.

1장 1절에서 베드로는 현재 터키의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수신자를 밝히고 있다.

바울이 아시아에 가기를 그렇게 바랬지만 바울은 유럽으로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는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사람의 계획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사도들을 이렇게 사용하셨다.

고난이라는 방법을 통해 예루살렘에 모여있던 기독교인들을 하나님은 흩으신 것이다.

이렇게 흩어진 기독교인들은 아시아로 떠나 교회를 세웠다.

하나님은 로마의 대 화재 사건을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고난을 주셨다.

로마의 대화재는 현재를 사는 우리도 알만큼 유명한 화재였다.

네로 황제는 그 화재의 주동자를 기독교인들로 돌렸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잡혀가 죽임을 당했다.

그 당시 원형경기장에 사자를 풀어 잔인하게 학살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는 고난 중에 있던 기독교인들을 위해 쓴 서신이다.

1장 3절에 보면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산 소망"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바람이다.

산 소망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소망을 뜻한다.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잠깐임을 명시하며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장차 우리에게 영광과 존귀를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겪으며 우리를 깊이 이해하며 교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분이 감내해야 했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난이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이기시고 영광 가운데 거하심은

우리에게 소망이 되어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만 집중해서 바라볼 때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허리를 동이고"라는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를 생각나게 한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라고 출애굽기 12장 11절에 말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띠"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근신하여"라는 헬라적 의미로는 "무엇에 취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주위 환경에 시선을 뺏기지 말고 하나에 집중하는 상태를 말한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는 오직 산 소망을 바라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행실에서 이런 말씀을 거룩하게 지키기를 베드로는 권면하고 있다.

15절 16절 말씀처럼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돼라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오직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모든 행실에서 "거룩"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거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상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사랑하라는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힘은 영광과 존귀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두려움을 지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현제의 삶도 녹녹치 않다. 매일이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전쟁은 아니지만 믿음을 지킨다는 게 참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오늘 베드로 사도가 하신 말씀처럼 이 세상의 삶은 잠깐임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칭찬과 함께 영광과 존귀를 주심을 바라는 산소망을 바래야 함을 상기시켜 주셨다.

끊임없이 예수님과 관계를 거룩하게 지키는 작업이 중요함을 느꼈다.

나는 비록 넘어지기 쉬우나 하나님이 나를 그 자리로 인도하시고 만들어 가심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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