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요한일서 묵상

차작가 2023. 10. 13. 11:16

요한 1서의 저자는 본문에 나오지는 않으나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직접 경험했다고 기록하므로 사도 요한에 의해 쓰였다고 본다.

서신의 권위로 보나 초대 교부들의 기록으로 보나 저자가 사도 요한이라는데 큰 이견은 없다.

요한 1 서는 서신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다른 신약 서신들과는 달리 서신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또 서신을 보낸 구체적인 장소나 대상이 전혀 나와 있지 않다.

확실한 것은 당시 서서히 영향력이 커지고 있던 이단의 가르침을 직면하고 있던 기독교인들을 향해 쓰였다는 것이다.

이단은 "적 그리스도"라고 불렸으며 "영은 거룩하고 육은 악하다!"라는 단순화된 이원론으로

성육신에 대한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초기 영지주의이다.

초기 영지주의라고 말하는 이유는 서신이 쓰인 당시 영지주의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세기 중반에 가서야 이들은 온전한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그는 서신의 수신자들을 "나의 자녀들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너희를 미혹케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노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기 못하게 하라"라고 분명하게 당부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이단들의 문제점을 세 가지 초점으로 열거하면서 세 가지 테스트를 통해 이단인지를 결정하라고 말한다.

첫째는 이단들의 신학적인 문제이다.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이단이다.

그들은 거룩한 영이 더러운 육으로 올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둘째는 도덕적 영역에서 의로운 행동이 사라진 불순종의 삶을 지적하는 점이다.

자신들은 특별한 지식을 지녔다고 주장하며 자신들 가운데 있는 죄성 자체를 부정하는 자들은 이단이다.

셋째는 사회적 영역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들에게는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기에 요한 1 서는 유독 형제 사랑을 강조한다.

요한 1서의 역사적 배경을 다루기란 쉽지 않다.

다른 서신에 비해 역사적 상황과 연결할 수 있을 만한 정보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볼 때 세린투스와 그의 가르침인 세린투스주의와 연결해 볼 수 있다.

세린투스는 사도요한이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곳인 에베소 사람이었고 그의 가르침이 요한 1서에서 묘사한

이단의 가르침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린투스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예수가 다른 인간과 똑같은 존재롤 세상에 태어났으며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의롭고 신중했고 지혜로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님 세례 시에 그리스도가 비둘기의 모습으로 임하였으며 그 후 예수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선포했고 기적을 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직전에 그리스도는 예수님을 떠나버렸고

그래서 결국 예수 혼자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와 예수를 분리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는 영이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로 예수의 모든 고난에 그리스도가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단적 주장을 펼쳤던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요한 1 서 5장 6절의 말씀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구절의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예수님이신 동시에 그리스도이신 한 분의 모습으로 세례와 수난의 죽음을 받으셨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초기 영지주의라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염두에 두고 요한 1서를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형제 사랑을 강조하며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라는

요한 1 서 4장 8절 말씀도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성경 에센스 요한 1서 편 김윤희 교수 참조)

오늘은 2장 말씀을 나누고 싶다.

2장 1절에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이분은 예수그리스도"라고 말씀을 시작한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신 분이시며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 오신 분이다.

즉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분이시다.

믿음은 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믿음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믿음을 가졌다는 증거는 오늘 말씀에 보면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2: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믿음이 없다고 한다.

우리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 안의 성령님이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대로 행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믿노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2장 7절 애 보면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사도 요한 이 이 말씀을 쓰는 것은 너희가 이미 알고 있던 말씀이므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빛 가운데 있다면 형제를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둠에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11절에 보면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둠 속에서 갈 곳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이것은 어둠으로 인하여 눈이 멀어져 있는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12절에 보면

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요한이 이 서신을 쓰는 이유를 12절에 명시하고 있다.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

초기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이 100프로 인간이고 100프로 신의 존재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구원하심을 부정함을 보며

성도들이 초기 영지주의 교리에 미혹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서신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을 기억한다면 이단의 영에 미혹되지 않는다.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바로 알고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도덕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임을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은 타인이 볼 때도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 속에서 눈이 멀어지는 삶이 아니라 빛 가운데 있으면서 항상 나를 빛으로 조명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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