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히브리서에서 11장과 12장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11장과 12장을 집중해서 묵상을 했다.
CBS 히브리서 강해 설교가 큰 도움이 되었다.
11장에서 결과적으로 믿음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일 하심의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12장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2장 1절에 보면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경주에는 세 가지의 원리가 있다.
12장은 "이러므로"라고 시작하는데 이 말은 11장에서 하고자 하는 말씀을 맺는 접속사이다.
"이러므로"즉, 구약시대에 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오실 예수님을 바라며 믿음을 지켰다.
그리고 너희들은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보았다.
히브리서 독자들인 유대 기독교인들과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신약시대를 사는 당시 핍박받는 기독교 인들과 우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여기서 "허다한 증인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가르침을 받고 십자가의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을 뜻한다.
믿음의 선조가 살던 구약시대에는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조상들이 있었다면
히브리서를 독자였던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우리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다시 정리하면 구약의 믿음의 선조들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성도이라면
신약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사는 믿음의 성도라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선조들은 "더 나은, 제사장, 더 나은 제사, 더 나은 제물, 더 나은 언약"을 기다리는 믿음 생활을 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고난을 당할 때 믿음을 지켰다.
그런데 예수님을 경험한 우리들은 고난을 당할 때 믿음을 지키는 건 당연하다는 의미이다.
믿음의 선조들에게도 고난이 있었고 우리들에게도 고난이 있지만 예수님을 경험한 신약시대의 상황이 더 낫다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다시 말하지만 고난과 핍박 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이다.
경주에는 세 가지 원리가 있다.
첫 번째 1절에서 말하듯이 "죄를 벗어 버리는" 것이다. 죄는 신앙의 경주를 방해한다.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무거운 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왜냐면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는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에 얽매이면 올바른 경주에 참여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인내하리다.
경주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곤"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싸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생은 늘 싸움의 연속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미 예수님은 죄의 사슬을 끊으시고 싸움에서 승리하셨다는 점이다.
우리가 쟁취하는 싸움이 아니라 이미 이기신 싸움을 인내하며 자리를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리를 지키고 버티는 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인내는 예수님의 진리 위에 서 있는 태도인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말씀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Let us fix our eyes on Jesus"이다.
즉 예수님을 바라보자 이 말은 예수님에게 시선을 "고정"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주의 세 가지 원리는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하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설득 작업이다.
2절의 "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예수님의 기쁨은 완전한 우리와 만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로 완성된 그리스도인이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만나는 기쁨!"
그 기쁨으로 인하여 십자가라는 수치스러운 형벌,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
징계는 헬라어로 "아들을 만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2장 5절에 보면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징계는 헬라어로 (파이데이안) "아들을 만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즉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12장 7절을 보면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우리가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고 그 마음속 깊숙한 곳에는 하나님께 보상받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알아가는 싸움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이 보상 심리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율법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우리가 이만큼 하면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시겠지!라는 보상 심리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사역할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 문제였다.
내가 이만큼 헌신하면 하나님은 알아주시겠지 그래서 성도들을 보내주시겠지....
또는 어떤 성도를 내가 사랑으로 섬기면 내 마음을 알아주시겠지..였다.
그래서 원망할 때가 많았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보면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보화가 숨겨진 밭을 사기전에 자기 소유를 다 판 행동이 나온다.
이것은 이 사람은 보화를 얻기 위해 수고한 게 아니라 소유를 다 판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농부의 당연한 행동을 수고로 생각한다.
보화 때문에 재산을 다 판 것은 다시 말하지만 마땅하고 당연한 행동이다.
여기서 보화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팀 켈러 목사님은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셨다.
구원받기 위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과 구원받았기 때문에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구원받은 은혜와 감사 때문에 헌신하고 수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주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당연한 것을 수고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약하여서 어려움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징계는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징계는 하나님의 복을 안겨주는 은혜이다.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이 징계를 주신다면 "내가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픈 과정을 견뎌내야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 보면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에게 심어진 진리대로 자라야 한다.
진리이면에 자리 잡은 죄의 본성, 악의 본성을 누르기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징계이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까지 징계는 계속된다.
즉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본성이 대립할 때 진리의 말씀으로 인간의 본성을 누르는 과정이 필요하다.
징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아가게 되고 그 말씀에 갈급함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알고 율법적인 본성을 누를 수 있다.
결국 징계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님이 평생에 결 쳐 나의 본성과 하나님의 본성이 대립할 때에 징계로 나를 잡아 주시고 말씀으로 나를 이끌어 주셔서 감사드린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기억하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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