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는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히브리서에는 유독 구약의 제사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오고 당시 신앙을 포기해야 하는 위험에 처해있던
1세기 유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나 어떤 이들은 배교자가 되었으며 또 다른 이들은 타협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 서신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그들이 이 서신서를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믿음을 굳건하게 지킬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서신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대속하심, 지사장직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이 있다.
저자의 권면이 중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인내이다.
저자는 수신자들이 잘 알고 있는 구약의 인물 중 아브라함과 모세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그가 오래 참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모세는 비록 보이지 않을지라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놀라울 만틈 참을 수 있었음을 언급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인내를 따를 자는 없다.
그분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으로 인해 혹독한 시험과 적의 찬 반대를 참을 수 있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저자는 무엇보다도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써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그분을 통해 주어진 것은 유대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좋은 요소들이 가득하다고 주장한다.
구원에 속한 더 좋은 것, 더 좋은 언약, 약속, 더 크고 온전한 장막, 더 좋은 제물, 더 좋은 부활 등의 표현을 통해서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분명히 한다.
성소를 논하는 부분에서도 이들에게 보이는 성소는 하늘에 있는 성소의 그림자이며 모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통해
이것 또한 비교할 수없이 귀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수님께서 드리신 희생 제사는 구약의 어떠한 제사와 비교도 안될 만큼 완전히 다르다.
"단번에"라는 표현을 통해 구약에서 날마다 드리는 제사와 구분하고 있다.
주님은" 단번에" 자신을 드렸고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피로 단번에 드려졌으며
믿는 이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며 거룩함을 얻게 되는 희생 제물이 되셨음을 가르친다.
다시 옛것으로 돌아가 버리는 행위는 무엇보다 어리석은 일이며 엄청난 책임과 형벌을 자초한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며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들이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무겁겠냐고 반문한다.
결국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구원을 온전케 하기 위해
두 번째로 나타나실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한다.
그분을 믿고 순종하며 끝까지 견고하게 잡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고 격려한다.
히브리서는 특히 현재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성경 에센스 히브리서 편 김윤희 교수 참조)
히브리서 1장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큰 구원을 계획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유독 천사와 비교하는 구절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천사 숭배를 하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천사와 비교하여서 설명한 것 같다.
그리고 2절부터 예수님을 통한 큰 구원의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2장 1절에 보면
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라고 시작하는 것은 1장 말씀을 정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으로 우리는 더욱더 그 말씀을 붙잡고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아야 됨을 말하고 있다.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그리고 3장부터는 안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안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안식일, 쉼 이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CBS 히브리서 강해를 통해 오늘에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1장에서 2장에서 하나님이 태초에 예수님을 예비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신 그 은혜로 믿음의 자녀가 되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속량하신 것이다.
당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핍박 가운데 있을 때 어떤 이들은 배교도 하고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2장 18절과 같이 말씀하신다.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고난 중에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고난 가운데 우리에게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이 곧 안식이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안식"이라는 것이다.
즉 3,4장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주신 안식은 곧 믿음이다.
히브리서 4장 2,3절에 보면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다면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안식할 수 있지만 믿음이 없으면 안식, 평안이 없다.
예를 들어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 믿음이 없었더라면 그 자체가 고난이고 저주의 자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그곳이 안식의 자리가 되어 평강을 누렸던 것이다.
또한 창세기에 보면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하라라는 말씀이 있다. (창 1:28)
이때도 타락하기 전이었지만 인간은 노동을 했다.
죄를 짓기 전이었으므로 노동이었지만 그들은 기쁘게 안식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고 난 후에는 똑같은 노동이었지만 안식하지 못했다. (창 3:19)
즉,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진 곳에는 안식이 없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행해지는 노동은 안식이다.
잔정 한 안식은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다.
안식이 무너진 노동은 자기의 욕심을 위해 일을 하므로 착취하고 경쟁이 되는 노동이 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노동은 즐거움이다.
또 다른 예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
현재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이 있다.
그런데 허락하심을 믿고 나아간다고 해서 모든 게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밟을 때도 그들은 전쟁을 하며 땅을 정복해야만했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이 땅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다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안식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미 주셨기에 하나님이 모두 책임 지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의 반대는 불순종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순종이다.
믿음이 곧 안식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비로소 안식할 수 있다.
3절 말씀처럼 믿음이 우리를 안식으로 인도하고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약속하신 말씀이다.
우리의 삶은 이미 허락하신 안식을 누리기 위해 예수님 안에서 순종을 훈련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평생의 숙제이기도 하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가운데 안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큰 구원과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히브리서를 통해 다시 한번 그들에게 안식에 들어갈 것을 힘쓰라고 말하고 있다.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나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어떠한 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한다면 그 자체가 기쁨이고 안식이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고난이라도 믿음으로 대하면 안식이고 기쁨의 자리가 된다. 내가 안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믿음의 고백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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