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회 형편: 핍박을 많이 받고 있는 형편이지만 믿음 안에서 잘 자라가는 교회였다.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이런 형편에 있는 교회에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과 같은 권면을 하고 있다.
5:18 범사(in all circumstances, in everything)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것은 어찌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처한 형편과 상황을 무시하는 말이다. 핍박과 환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형편에서 감사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도의 이 말은 우리가 실천하기엔 매우 힘이 드는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수많은 일을 겪게 된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만나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사도는 인간의 이러한 형편과 나약함을 몰라서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일까? 바울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잘 알았다. 그런데 왜 그와 같은 말을 하는 하는 것일까?
해결책 제시 (5절 & 9절)
먼저 5:5절(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을 보면 사도는 성도를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않은 빛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도는 빛의 아들로서 어둠에 속한 자들과의 구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성도의 거룩이다. 이처럼 구별된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밤에 취해 밤에 자지 말고 정신을 차려 깨어있어야 한다.
세상과 어둠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자기 인생에 집착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 욕망으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산다. 그래서 원하는 인생이 펼쳐지지 않으면 슬퍼하고 낙심하고 불행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세상에 속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특징이다.
하지만 세상이 잊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뜻을 물으시고 이뤄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시는 것이다. 때문에 분명한 것은 우리의 뜻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에 속한 자와 낮에 속한 자가 신을 찾는 이유는 다르다. 밤에 속한 자는 자신의 뜻을 위해 신을 찾지만, 낮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하나님을 찾는다.
9절을 보면(하나님이 우리를 세우 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상에 세우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우리의 구원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인생이 내가 원하는 행복과 축복으로 채워지도록 인도 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가신다. 때문에, 고통스럽고 힘든 모든 일들도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성도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하게 한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
인생을 다스리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서 수시로 방향이 틀어지면서 살아왔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뜻을 가지고 일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잊지 않을 때 인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달라진다.
성도의 인생에는 우연이 없고 재수가 좋고 나쁨이 없다. 모든 것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 본문의 말씀이다. 억지로 감사하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인생에 대한 생각,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밤에 속한 자가 아니라 낮에 속한 빛의 아들의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성도가 구원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둔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내가 원하는 인생을 이뤄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복되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기 위해 일하실 것인가에 대한 답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때문에 비록 핍박이 있고 환난이 있다고 해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믿음으로 인해서 진정한 감사가 있게 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묵상하자! 만약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단지 ‘고생시키기 위함인가, 아니면 선하신 뜻을 가지고 우리를 간섭하시는 일인가?’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가에 대해 정립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감사의 중심에 자신을 세워둔다.
사람은 나에게 좋은 일이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이 주어질 때만 감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슬픈 일이 있고 힘든 일이 있으면 감사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면 달라진다.
비록 핍박과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나를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임을 안다면 성도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구원이 내 뜻과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분만을 의지하며 살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성도는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성도는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지기를 구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깨닫길 소원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18절을 보면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한다. 즉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은혜이다.
그런데도 성도라고 하는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관심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뜻에 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핍박과 환난에 처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 어떤 핍박과 환난도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려서 자기 백성을 세상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되새긴다면 핍박과 환난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성도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하게 한다.
구원은 우리와 무관한 하나님만의 일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선택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될 자로 불려 나온 것이고,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물론 세상에 취해 있고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는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하시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은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간섭이 때로는 우리를 괴롭게 하지만, 그 간섭으로 인해서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성도이다. 그래서 성도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참된 복을 받은 사람이 성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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