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1 - 요한복음 1장에서 5장 묵상

차작가 2023. 12. 24. 11:45

나다나엘을 부르시는 장면을 읽으면 내가 기도 중에 경험한 한 장면이 항상 떠오른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 한마디에 바로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의 율법에 있는 선지자를 만났다며

그 이름은 요셉의 아들 예수라고 말한다.

빌립은 벳새다 사람인데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 북쪽 동편에 위치한 지역이다.

벳새다의 뜻은 "어부들의 집" 또는 "물고기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비참한 집"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름으로 어부들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본분 왕은 헤롯 안티파스(B.C 20~A.D39)인데 성경에서는 헤롯 안디바로 표기되어 있다.

그는 갈릴리의 영주이며 헤롯 대왕의 아들이다.

헬롯은 세례요한을 죽이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까지 모두 관여했던 인물이다.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에 영주로 있을 때 로마의 황제는 티베리우스였는데 그는 의심이 많은 자이며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헤롯은 정치적인 야욕이 강한 자로서 자신의 아버지 헤롯 대왕처럼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려는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통치하던 갈릴리에 티베리우스 황제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 형성한 도시 티베리아스를 설립해

여러 해 동안 유대인들의 종교 행정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티베리아스 앞의 갈릴리 호수의 이름을 디베랴 호수로 명칭하는 등 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그것은 시민들의 돈을 착취하고 백성들의 삶은 더 궁핍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대부분 어부였던 백성들은 삶이 곤고해져 갔다.

물고기를 잡는 양에 의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배와 그물의 크기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에 물고기가 안 잡히더라도

세금은 납부해야 했기에 백성들은 가난해졌고 또 헤롯이 경영하는 염장하는 업체에

물고기를 싼 가격에 물고기를 넘겨야만 해서 여러모로 힘든 삶을 살았다.

그래서 배를 버리고 가는 어부도 생기고 생계를 보장받지도 못하는 자신들의 일을 버려야만 해서

그 당시 어부들은 세상의 개혁을 꿈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와 같은 어부들을 찾으신 것이다.(성서학당 요한복음 6강 김기석 목사님 편 참조)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나는 크리스챤이 되기 전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우습게 봤었다.

또 목회자도 마찬 가지였다.

지금은 다르지만 내 나이때는 목사가 되려면 대부분 후기대를 가야했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 보다는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이 가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교회에서 기타치고 노는 아이들이 목사가 되는 줄 알았었다.

마치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것이 날수 있느냐!" 라고 한것처럼

교회를 잘 몰랐고 가족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소명 헌신 이런것은 몰랐고 그저 직업이 목사인 정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 보니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이건 소명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구나 라는걸 알았다.

이랬던 내가 예수님 믿고 사모로서 살았다는건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따르는것과는 비교하기 그렇지만

나에게도 나의 가족들에게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오늘 말씀중에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만나자 말자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 이라 그 속에는 간사한 것이 없도다" 라고 말씀하신다.

지금의 나는 자신이 없지만 그때는 아마도 순수하게 예수님을 믿고 소명을 가지고 열심히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려고 노력했었던것 같다.

좀더 과거로 돌아가 보면 ...

처음 기도중에 성령님을 체험하고 기도하게 하시고 나의 죄를 고백하고 내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임을 알게 되어서

차마 부끄러워 고개를 들수가 없었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의 가슴 깊숙이 있던 마음의 병을 고쳐주셨다.

7살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외로웠던 그날밤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고 예수님이 뚜렷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그 때도 너와 함께 했다..." 예수님 믿는 순간부터 나와 함께 하신게 아니라 그 외로웠던 밤도 나와 함께하시고

나의 고통을 함께 해 주심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7살 아이로 돌아가 예수님 품안에서 엉엉 울었던 순간이었고 그 외로움으로 인한 병을 고쳐주셨다.

나중에 말씀 공부를 하며 7살이 아니라 태초부터 나를 택하신 은혜를 깨닫게 되었고 오늘 말씀처럼

"더 큰일을 보리라!" 하신걸 경험하는 나의 삶이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라는 말씀과 같이..

나는 날마다 벽돌 깨기를 하듯 하나님이 더 큰일을 보여주시고 깨달아 가는 중이다.

말씀 앞에 나올 때 부어 주시는 은혜가 너무나 커 매일 더 큰일을 갱신하며 살고 있다.

51절에 예수님의 재림은 아마 틀라이막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종말의 때를 살아가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고난 가운데도 나는 늘 천국을 경험하고 살기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님의 은혜이다.

마치 "너 그때도 너와 함께 하였다가 끝인 줄 알았니! 앞으로 더 큰일을 볼 준비됐니!" 하시는 말씀 같다.

그래서 날마다 감탄하며 살는 즐거움이 있다.

나를 택하시고 부족한 나를 제자 삼아주셔서 나의 모든 삶을 통하여 주의 이름을 높여 드릴 수 있게 하신 복을 주셔서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