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청지기를 읽는데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답을 주는 것 같아 20장까지 묵상을 끝내고 다시 반복해서 16장을 묵상했다.
불의한 청지기는 남편이 목회를 할 때 인상 깊게 들은 말씀이라 참조를 하고 싶은데 어디에다 요약을 해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예수님의 가르침"이나"예수님과 위대한 대화"나"주제별 설교"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주제는 "성전 건축"이다.
성전 건축이라는 말도 틀린 말이긴 하다.
"예배당 건축"이 가장 바른 표현이긴 하지만 요즘은 왜 바르게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김기석 목사님이 미가서 혹은 말라기 강해 설교? 인가 강의하시면서 각각의 지역 교회가 십일조를 모두 가난한 나라의 부채를 대신 져 주는 것을 한다면
아마도 세상은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설교를 하신 기억이 난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세계의 모든 교회가 이런 마음으로 헌금을 사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뭉클 한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마음도 귀하지만 드려진 헌금이 바르게 사용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로몬 시대로 돌아가 보면 솔로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성전 건축이었지만 그 성전 건축으로 인해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라지는
아픔을 낳았고 그것은 우상숭배라는 죄의 확장을 가져왔다.
지금도 그 성전은 재건되지 않고 무너진 상태로 여전히 그곳은 전쟁 중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과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 뿐인가! 현재도 교회 건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목회자와 교회가 타락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던가..
지 교회 중심적 성장으로 주변에 있는 작은 교회는 어려움을 겪고 교인들은 큰 교회로 이동하며
교회는 기업화가 되는 결과를 낳는 것에 한몫을 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세상의 성공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교회를 세상의 비난거리로 만들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장 실망하는 점은...
세상의 흔한 규칙을 적용해서라도 투표를 했어야만 했다.
"오늘 처음 나온 분이 아니라면 모두 투표권을 주는" 투표가 말이 되는가!
세상에도 허용이 안되는 규칙을 적용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소한 일 년은 출석하고 새 신자반을 이수한 교인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
아니면 세례교인이라든지...
올바른 절차를 밟지도 않은 의구심을 남기는 방법으로 시작된 교회 건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윗이 모두 준비해 놓은 성전 건축도 결국은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셨다.
온 백성이 한마음으로 시작한 성전 건축도 결국은 무너졌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베드로 이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6장 18절)
제자 된 우리가 모인 곳이 교회이고 이 교회는 다른 교회를 개척해 가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 교회의 성장... 자 교회 중심.. 교회의 덩치만 키우는 게 아니라 교회는 많은 교회를 개척해 가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도들도 성도들이 드린 헌금이 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영혼을 살리는 곳에 사용되고 있는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곳에 올바르게 사용되는지.. 선교에 사용되는...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교회가 물질을 깔고 앉아 있지는 않은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주시해야 한다.
너무 억지스럽게 교회의 덩치만 키우는 것은 나는 위험하다는 의견이다.
물론 모든 큰 교회가 이런 목적으로 교회를 건축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상식적인 선에서 규칙을 정해 투표를 하고 정확하게 모든
경우의 수를 준비해서 설명할 의무가 있는 것이고 우린 들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잘 이루어져도 불협화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인데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선 명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도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있는데
믿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 보다 못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교회가 물질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는것도 포함되어 있다.
16: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16: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종이 주인의 제물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해고 통지를 한다.
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그래서 종은 자신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자 해고 후 앞으로 살길을 찾기 위해 꾀를 낸다.
그 당시 기름 100말의 채무자는 본래는 50말을 빌려 썼는데 이자 100%인 50말을 보태어 계약서에는 100말을 빌려 쓴 것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청지기는 자신이 해임을 당하기 전에 이런 불법으로 고리대금하는 것을 제거하고
그가 본래 빌려 쓴 원금 50말만 쓰도록 정정한 것이다.
그리고 밀 100석도 본래는 80석을 빌렸는데 그의 이자 25%인 20석을 붙여 100석으로 기록된 계약서를
이제 정직하게 원금인 80석만 기록하게 된 것이다.
즉, 주인의 돈 원금은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므로 채무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나중에 자신을 해고당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채무자는 이런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주인이 채무자를 만날 때 고마운 사람이 되니
주인을 덕망 높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빛의 아들보다 지혜롭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그러므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말씀하시며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교회는 많은 돈이 오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회계를 맡은 분이 계시고 성도들이 드린 헌금을 잘 관리하고 필요한 곳에 사용하게 되어있다.
교회에는 사역자 협의회든 당회든 성도들이 드려진 물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의논하고 합당한 절차를 거쳐서 그곳에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성도가 아닌.. 아직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헌금의 사용 여부가 결정 나게 해서는 안 되는 게 원칙이다.
하물며 "교회 건축"은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뜨내기들에 의해 이 중요한 결정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투표하고 책임을 질 의무가 없을뿐더러 나는 처음으로 정착한 교회를 떠나야 되나 말아야 되냐 하는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나가고!라는 생각으로 이런 일을 한다면 더 이상 이 교회는 믿음이 안 간다.
그리고 무조건 순종이라는 멍에도 씌워서도 안된다.
이건 세상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시민권이 있는 사람만이 투표의 권리가 있는 것과도 같다.
오늘 왔다가 내일 나갈 수도 있는 분들에 의해..
성전 건축을 위해 책임을 쳐야 하는 의무도 없는 분들에 의해 결정이 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
다~~ 믿음으로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홀이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은혜롭게 모든 것을 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은혜롭게 가 규칙이 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 된 사태에서 은혜롭게 멤버십이 감당해야 한다고 책임을 져라고 해서도 안된다.
올바른 청지기( 목회자 장로 집사 사역자 협의회 교회 건축위원 등)로서 교회에 드려진 헌금을 바른 절차에 의해 바르게 사용되길 희망한다.
뭐든지 무리하게 자신의 뜻을 이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폭력과 다름없다.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 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6: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6: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교회 건축이라는 프로젝트는 평생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대단한 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이다.
대충 동그라미, 엑스를 표하는 반장 선거하듯 하는 것이 아니다.
드려진 헌금도 올바른 절차를 통해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참된 것을 전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를 묻고 싶다.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가 있다면 묵인하지 말고 또 믿음 없는 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또 순종도 강요하지 말고 지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야 하고..
교회의 법에 따라 최소한 합리적으로라도 해야만 순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6개월 된 새 신자로서 교회 건축이 되든 안 되든 뭐가 나에게 중요하겠는가 동기부여가 안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루어지는 절차를 보며 은혜가 안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이 교회가 과연 올바른 교회인가..
최소한 상식적인 교회인가.. 내가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교회는 그래서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아라는 강의를 3개월 동안 들으며 강사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결론이 바로 교회는 달라야 한다였다.
세상보다도 못한 교회가 안되기 위해서는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지 않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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