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열왕기하 18장에서 25장까지 묵상

차작가 2023. 9. 23. 07:45

18장에서 25장까지 여러 왕들 중에 유다 왕 히스기야와 요시야에 대해서 나누고 싶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다윗과 같이 모든 면에서 정직하게 행한 왕이었다.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고 처음으로 등장하는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부셨다.

나는 놋뱀까지 우상으로 숭배하는지 처음 알았다.

성경에서는 하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않았다고 쓰여있다.

모세가 준 모든 계명을 지켰고 다른 왕들처럼 앗수르 왕을 섬기며 조공을 바치지 않은 왕이었고

블레셋을 쳐서 그 영토가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다고 말한다.

히스기야 왕 시대에 북 이스라엘 왕은 호세야였다.

이때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북 이스라엘을 포위했고 히스기야 왕 제6년째 되던 해

호세야가 왕이 된 지 9년에 사마리아가 앗수르에게 함락된다.

이때 앗수르 왕이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로잡아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데 사람의 여러 성읍으로 이동시켰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언약을 지키지 않았으며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 당하고 남유다 왕 히스기아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마음이 변해갔다.

하시기야가 왕이 된지 제14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성을 쳐서 점령하고

유다의 히스기야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게 된다.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집트 등 주위의 많은 나라들을 정복해 주위 나라의 위협적인 왕국이 되었다.

히스기야는 두려워서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내어 준다.

앗수르왕은 은 300 달란트 금 30달란트를 정하여 히스기야에게 조공의 양을 정해준다.

뿐만 아니라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심지어 성전 문의 금과 모든 기둥의 입힌 금을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앗수르는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가서 히스기야 왕을 쳐서 유다 땅의 규모는 예루살렘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비방하고 너희가 의뢰하는 하나님이 계시냐며 히스기야 너는 네 주 앗수르왕과 내기하자고 자극한다.

예루살렘 성에 있는 백성들과 히스기야와 신하들은 포위를 당함으로 위협을 느꼈고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앗수르의 랍사게에게 자신들은 아람 말을 알아들으니 아람말로 말하고

성위에 있는 백성들이 두려워하니 유다 말로 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랍사게는 큰 소리로 유다 말로 말을 하고 앗수르 왕이 너희들에게 말했다며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은 항복하고 나오면 좋은 포도와 무화과와 자기의 우물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너희들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만 그곳에는 예루살렘과 같은 지방이니 곡식과 포도주가 있고 떡과 포도원이 있으며

감람과 꿀이 있어서 너희가 죽지 않고 잘 살 수 있다고 유다 말로 예루살렘 백성에게 말한다.

그리고 히스기야갸 백성들을 설득하며 여호와께서 건지신다고 말해도 듣지 말고

이때까지 어떠한 신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신이 없다며 하나님을 조롱한다.

이 당시는 나라와 나라의 전쟁이 신들의 전쟁으로 인식되었다.

애굽은 바알신이면 애굽과 전쟁에서 앗수르가 이겼다면 앗수르의 신이 이겼다고 인식되었다.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유다가 이겼다면 유다의 신 여호와가 이긴 것이 된다.

앗수르 왕이 많은 나라를 정복했으므로 앗수르의 신이 이겼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유다의 신하들과 히스기야 왕은 옷을 찢고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셈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다 이사야에게 보낸다.

앗수르왕을 대신해 랍사게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방했으니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한다.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19장 7절에 보면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라고 전한다. 이 말씀은 이루어졌다.

또 히스기야는 또 병이 들어 죽는다는 예언을 이사야에게 듣고 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한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고 생명을 15년 더 연장 받는다.

히스기야의 기도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한 것 때문이다.

왜냐면 이때는 히스기야의 자손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해서 히스기야의 상처에 놓으니 그의 병이 나았다.

히스기야 후반 부때에는 바벨론이 점점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 말은 앗수르와 바벨론이 점점 더 남 유다를 위협했고

바벨론이 조금씩 세력이 커지면서 앗수르는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벨론이 초기라 앗수르 보다 위협적이지 않아서였는지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든 것을 알고 편지와 예물을 히스기야에게 보냈고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히스기야는 보물과 금 은과 향품과 기름과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즉 그의 나라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을 알고 이사야가 그들에게 보인 것은 다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며 너에게는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왕에게서 난 모든 아들들은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씀은 후에 이루어진다.

히스기야가 죽고 므낫세가 왕이 되었지만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제거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까지 경배한다.

그리고 가장 혐오스러운 몰렉을 섬기고 자신의 아들을 불 가운데에 지나게 하고 신접한 사람 박수들을 신임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 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만들고 예루살렘에 그 죄가 가득하게 한다.

북 이스라엘에는 그 많은 왕들 중에 단 한 명도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왕이 없었다.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고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을 원했지만

그들은 끝내 돌이키지 않았고 모든 민족이 앗수르에 강제로 주거를 이전 당해서 민족의 순수성을 잃게 된다.

앗수르의 사마리아로 이주해서 대부분이 혼혈인들이 생긴다.

그래서 남 유다인들은 사마리안들과 상종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남 유다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지만 끝내 앗수르와 타협하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지 못한다.

유일하게 남 유다의 왕 중에 하나님 마음에 끝까지 연합한 왕은 여호사밧과 요시야뿐이었다.

유다 왕 중에 하나님과 연합한 왕 중에 요시야가 대표적이다.

요시야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고 다윗의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왕이었다.

"다시 사는 삶"에 열왕기 편에 나누었던 내용이라 간단하게 요약하면 요시야는 대제사장 힐기야 편에 율법책을 성전에서 발견하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내린 진노의 결과라며 모든 우상들을 폐하고 불살랐다.

그리고 단 위에 서서 (여기서 단은 성전의 두 기둥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신 여호와를 상징하는 의미이다)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고 23장 3절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그리고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언약 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처음으로 지키게 한 왕이다.

열왕기하의 마지막을 보면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이 석방되고 죄수의 옷을 벗고 바벨론에서 일 평생 왕의 양식을 먹고

모든 필요한 것들을 바벨론 왕에게 받게 된다고 끝을 맺는다.

북 이스라엘도 남 유다도 멸망했지만 여호와긴 왕이 복귀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그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말씀으로 보여 준다.

결국은 그들의 심판이 끝이 아니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회복된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구약에서 열왕기서는 조금 어려운 책이다.

읽기도 힘든 왕들의 이름들이 지루하고 또 그들의 역사가 반복됨으로 지루한 면도 있다.

무엇보다도 내 나라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국 역사에 비해 간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껏해야 열왕기서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를 공부한 나로서는 생각보다 별것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다 믿음의 역사를 사는 우리로서는 결코 남의 역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이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역사로 인지하면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공감이 된다.

그들의 실패는 조상 탓도 환경 탓도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나만 따르라 나만 경배하라 나만 믿으라" 이것뿐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쉬울까?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것들로부터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영적 전쟁이다.

앗수르와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의 침략이 그들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고 눈에 보이는 인간이 만든 우상들을 쫓았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고 타협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쉽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쉽게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문제이고 그들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