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열왕기상 16장 29절에서 22장까지 묵상

차작가 2023. 9. 23. 07:38

열왕기상에서 엘리야와 아합,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엘리야의 기도, 로뎀 나무 아래의 엘리야,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 마가야 선지자,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가 오늘 읽은 말씀 안에 담겨있다.

몇 장 안되지만 엄청난 역사 스토리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일 년에 대략 3독 정도 하니까 이번에는 여러 이야기 중에 두 가지만 나누었으면 한다.

작년 "다시 사는 삶"에서 통독했을 때 사르밧 괴부 이야기를 나누었었기에 이번에는 건너 뛰기로 했다.

말씀은 참으로 오묘한 게 동일한 말씀인데 오늘 느낀 묵상은 또 새롭게 다가왔다.

아쉽지만 오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야합 왕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아합은 이전에 어떤 사람보다 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 행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심지어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바알을 예배한 왕이다.

그리고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해 제단을 쌓고 바알의 아내 신인 아세라 신도 만들고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 보다 더 심하게 하나님을 노하게 한 왕이다.

이세벨은 이세벨이라는 이름을 누구도 짓지 않을 정도로 악랄하기 유명한 왕후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멸하고 나봇의 포도원을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죽여 그의 포도원을 착취하고

사마리아에 심한 기근이 와서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백성들의 어려움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가축들을 위해 물을 찾아 두루 다니는 자신의 것만 잃지 않으면 된다는 그런 왕이었다.

심지어 이세벨은 엘리야가 기도하자 비가 왔는데 오히려 그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다.

결국 하나님의 예언대로 아합왕과 이세벨은 죽는다.

미가야의 예언대로 22장 37-38절에 보면 "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이 예언이 열왕기상 마지막 장에 이루어진다.

이세벨에 대하여는 21장 23-24절에 보면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라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이 말씀도 이루어진다.

아합을 여호와 앞에서 항상 충동하였기 때문에 당한 죽음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을 이루시며 죄에 대한 결과는 죽음임을 말씀하신다.

두 번째는 오바댜 이야기이다.

오바댜는 아합왕 궁에서 국무총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성경에는 왕궁 맡은 자라 불렀으므로 왕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신하였다.

왕과 백성들도 우상숭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댜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다.

오바댜는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멸할 때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나누어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그들을 돌봤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자신도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 명의 선지자들에게 매일 먹을 음식을 제공하고 들키지 않게 숨겨 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3년 동안 가뭄으로 힘든 시기에 그 많은 양식을 제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오바댜가 물의 근원을 찾으려고 왕과 함께 땅을 나누어 이편 저편으로 다닐 때 엘리야를 만나게 되고

그를 알아보고 엎드려 절하고 "내 주 엘리야 당신이 시니이까"라고 하자

엘리야는 자신이 여기 있다고 아합에게 말하라고 한다.

오바댜는 만약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말한다면 아합의 손에 죽게 될 것이라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엘리야의 말씀에 순종해서 오바댜가 아합을 만나 그에게 말하고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갔다.

그 이후에 갈멜산의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다.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 대 엘리야가 기도해서 엘리야의 기도로 오랜 기근의 끝인 비가 오는 사건이다.

그 후에 엘리야는 호렙산에 가서 기도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 엘리야가 앞으로 해야 할 사명을 받게 된다.

첫 번째는 예후에게 기름 붓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가름 붓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을 대신하여 선지자로 세우는 일이다.

여기서 엘리사를 부를 때 자신의 부모와 입 맞추게 해달라고 청한다.

엘리사는 그를 떠나 돌아가서 황소 두 마리를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서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바로 엘리야를 따랐다.

이 퍼포먼스는 더 이상 자신이 하던 일에 돌아가지 않고 선지자로서 엘리야를 따르겠다는 결심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오바댜 그리고 엘리사, 엘리야의 각자 다른 사명을 깊이 묵상했다.

사람마다 주어진 사명이 있다.

오바댜는 선지자를 돕는 사명을 주셨고 엘리야는 3년 동안 혼자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까마귀를 통해 먹으며 준비하는 시간을

혼자 견디고 난 후 외롭게 850명의 이방 신의 선지자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사명을 받았다.

엘리야는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다소 소심하고 연약해 보이는 성품이지만

뜻밖에도 하나님은 목숨을 건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하시며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오히려 엘리사가 좀 더 대범해 보이고 잘 감당할 것 같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쓰시는 것 같이 엘리야를 사용하셨다.

그리고 굴속에 숨어지내는 선지자도 있다.

그분들은 과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 또한 사용하신다.

나는 아합과 이세벨으로인한 이 고난의 시간에 각자가 처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발견했다.

오바댜는 그가 처한 환경 속에서 최선의 헌신을 했고 백 명의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동일했다.

엘리사가 소가 밭을 가는데 필요한 기구들을 불사르고 황소 두 마리를 삶아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결단하고 엘리야를 따르는 모습을 보며 오바댜도 숨어 있던 선지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고난이 더 크다 작다 할 수 없지만 모든 하나님이 주신 고난은 고귀하다.

여기에서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헌신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질문 자체가 모순이다.

그 헌신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가 오바댜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면 그게 나에게 옳은 것이고

숨어있기를 원하는 기간이라면 그게 나한테 옳은 것이고 또 엘리사처럼 모든 것을 정리하고 따르는 것이라면 그것이 옳은 것이고

엘리야처럼 무서운 순간을 직면하며 싸우는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옳은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헌신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