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2 - 출애굽기 11장에서 20장 묵상

차작가 2024. 2. 13. 12:03

이민 목회를 할 때 가장 힘들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민자로 살면서 많은 고생을 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고생을 많이 하고 산 사람들이 너그러울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천만에이다.

물론 고생을 하고 산다고 해서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

고생을 하며 살았기에 어려운 이웃을 돌볼 줄도 알고 나눌 줄도 아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타국에서 고생하며 사는 건 좀 다른 차원이 있는 것 같다.

너무 고달프게 살다 보니 요즘 세대를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 같이....

오랜 세월 고생하며 이 땅에서 살았기에 최근에 이민온 사람들을 보며

"그게 고생이라고...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라는 식으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편견을 가지고 대한 다든지...

자신이 누리지 못한 삶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을 보며 자격지심을 느끼는 경우라든지...

그래서 옹졸한 마음으로 목회자를 대하는 경우를 많이 겪었었다.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려 다가가게 만들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그런 분들을 대할 때는 낮은 자존감을 건드리면 안 되기에 모든 것을 조심해야 했고

신경을 바짝 쓰지 않으며 안되었기에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오늘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고난이 심히 깊어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이 찾아와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옛날 목회할 때 경험했던 몇몇 분들이 머리에 스쳐갔다.

14:10 바로 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드디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쟁에서 이긴 군대가 전리품을 가지고 떠나는 것처럼

애굽 사람들이 준 각종 금은과 양식과 의복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행진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바로가 후회하고 말과 병거를 끌고 군사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다.

이 말씀 중에 공감하는 부분이 "심히 두려워하여"와 "당신이 우리를 !"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재앙들을 보며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죽음의 사자가 지나가게 하셔서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구별하게 하신 것이

모세의 하나님으로 알았기에 두려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만약 나의 하나님으로 알았다면 얼른 아버지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여전히 당신의 하나님이었다.

이 말씀을 보고 우리는 쉽게 "어쩜 저럴 수가 있는가!"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너무 힘든 상황을 겪으면 자존감은 낮아지고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살기 쉽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방황하는 이민 가정의 사춘기 아이들처럼 ....

이민자로 타국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며 자존감이 무너져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처럼..

남들을 쉽게 사는데 자기는 왜 이렇게 힘든가!라는 자괴감에 빠지다 보면

좋은 말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인격으로 변해 버리기 쉬운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목회를 하다 보니 이런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나의 어머님 뻘인 분들이 나에게 그들이 고생한 일을 이야기하며 넌 왜 이렇게 편하게 사니! 하며 대하는 걸 보면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런 분들에게 사랑으로 대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었다.

돌아보니 조금 더 이해하고 너그럽게 대할 순 없었을까.. 조금 더 따뜻하게 위로할 순 없었을까..

그런 일을 하라고 부르신 건데.. 하는 후회가 된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노예로 평생 살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선민의식 이런 것도 다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산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정작 구원의 길이 열렸는데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잘 아시기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 그들을 찾아 주시고

훈련을 통해 그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드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로 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14:18 내가 바로 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은 원망하는 그들에게 자신이 어떤 분임을 선포하시듯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이 되게 하시어 건너게 하셨다.

말 병거 그따위 것에 겁먹지 마라! 나는 바다에게 명령하면 바다가 복종하고 이 바다도 너도 만드신 분임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애굽 군대도 바로도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인생을 잘 모를 때는 툴툴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심했다.

이해는 하고 나도 그런 부분이 있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게 아니야!라고 했었다.

그러나 죽음의 문 앞에 들락거리며 얻은 건 나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난 믿음이 있는가? 믿음이라는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읽을수록 더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고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한 부분이 잘못이 아닌 것은 아니다.

원망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또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건 잘못인 건 분명하니 핑게 할 순 없다.

그러나 나에게 하신 말씀은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고 원망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도 해야 했고 원망이 아닌 기도를 했어야 된다는 걸 알게 하셨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을 걷게 하시는 건 하나님의 영역이기에 보고 걸어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시 그 자리에 간다면 조금 다른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그 나이 그때의 나를 책망하고 자책할 마음은 없다.

그땐 그런 순간을 겪어야 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모든 순간이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만의 홍해를 갈라지게 하시고 나의 기를 살려주신 게 너무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오늘 영광을 올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