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333

손바닥 묵상 2 - 시편 61편에서 80편 묵상

시편 묵상을 하면 항상 아름다운 표현법이 소녀 감성을 만드는 것 같다. 오늘은 단순하게 시적 표현이 너무 아름다워 함께 저자의 마음에 공감이 되어 행복했다. 특히 65:6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65:7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라는 말씀이나 65:13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라는 표현은 말씀을 묵상하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경의로운 광경인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표현하는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나 영적 회복을 주고 마음의 평안을 주신다. 그래서 힘든 상황에선 특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다. ​ 시편 65편..

손바닥 묵상 2024.04.17

손바닥 묵상 2 - 시편 41편에서 60편 묵상

시편 42편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다. 70인 역 성경에서는 42편과 43편이 한 시로 말하고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각 편을 독립된 시로 본다. 시편 42편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산다는 내용이다. 시편 42편 1절에서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니이다 "에서 갈급하나이다는 단순히 목마르다는 표현이 아니라 너무나 목말라 숨을 헐떡이며 울부짖는 모습이라는 단어인 "아라그"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만큼 간절히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표현한다. ​ 매주일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은 나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나는 매주일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일이 아니라 기적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가고 있다..

손바닥 묵상 2024.04.16

손바닥 묵상 2 - 시편 21편에서 40편 묵상

시편은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가 기뻤다가 여러 감정을 끄집어 내게 만든다. 이것이 시가 주는 묘미인가 보다. 오늘은 유독 37편 말씀 중에"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 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말씀이 뭉클하게 와닿아 꼭 이 구절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힘이 되는 말씀이다. 알파벳순으로 지어져 있는 잠언과 같은 지혜시라 읽고 외우기도 좋고 한번 들으면 머리에 잘 남아서 오늘 말씀은 언제나 힘든 상황에서 도움이 될 것 같다. ​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37: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

손바닥 묵상 2024.04.13

손바닥 묵상 2 - 시편 1편에서 20편 묵상

시편 3편은 개인적인 탄원 시이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기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다는 확신의 고백이 담겨있는 시이다. 이 시가 오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 어찌하여! 하며 부르짖으나 결국은 하나님은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말하며 하나님은 자신의 무죄함을 알아주시고 승리를 주신다는 고백의 탄원 시이다. 특히 오늘 이 말씀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라"라는 말씀 때문이다. ​ 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손바닥 묵상 2024.04.12

손바닥 묵상 2 - 욥기 21장에서 30장 묵상

욥이 사람에게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친구들은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상처만 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욥은 결국 해답은 하나님께 있으니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내야 된다고 결단 한다. 욥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경험한다. 이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욥기서 후반부에 이르면 욥은 친구들과의 대화보다 하나님께 몰두하는 걸 볼 수 있다. ​ 27: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7: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27: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27:5 나는 결코 너희를 ..

손바닥 묵상 2024.04.10

손바닥 묵상 2 - 욥기 11장에서 20장 묵상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욥과 세 친구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억울할 땐 나의 입장을 조목조목 말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블로그를 시작하며 내 의견을 이야기 한지 불과 5년 6년 정도 돼가는 것 같다. 그동안은 글은 혼자 쓰긴 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옮겨 본 적이 없었다. 글도 그런데 말은 오죽할까.. ​ 나는 욥이 친구들의 비난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은 정당하다고 말하고 심지어 친구들을 비난하고 벌 내리시길 원한다고 말하는 걸 보며 참 용감하다..... 나도 저런 인생을 살았다면 하나님이 빨리 이유라도 알려주셨을걸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조금의 인내도 없었던 욥... 나에게 하나님은 너도 너의 감정을 숨기지 말라고 하는 음성 같았다. 12:2..

손바닥 묵상 2024.04.09

손바닥 묵상 2 - 욥기 1장에서 10장 묵상

까닭 없이 받는 고난이 떠오르는 욥기서를 지난 통독 때 읽고 많은 은혜를 받은 기억이 난다. 나는 까닭 있는 고난이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고난을 생각하며 나에게 주신 은혜를 찾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힘을 얻게 해 주신 욥기서였다. ​ 오늘은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1차전에서 완패를 하고 난 뒤 하나님께 나아와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라는 말을 하는 장면에서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무엇보다 건강이 복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10절의 욥의 고백을 오늘은 나누고 싶다. ​ 2:4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 2:9 그의 아내가 그에..

손바닥 묵상 2024.04.06

손바닥 목상 2 - 에스더 1장에서 10장 묵상

에스더와 모르드개라는 준비된 인물이 온 민족의 생명을 구하는 이 사건은 유대인들이 지금도 해마다 부림절을 지키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영상으로 지금도 부림절을 지키는 유대인들을 본 적이 있는데 과자를 굽고 이웃들에게 나누는 전통으로 이어져 가는 걸 볼 때 유다 민족들이 겪은 이 사건은 대단한 충격을 안겨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바벨론 시대 페르시아 시대를 거치며 나라를 잃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 자기를 지킨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살아갔을 유다 민족들도 이해가 되지만 또 그런 인색한 유다인들을 미워하는 여러 민족들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한 민족들 말살하는 그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오늘 에스더서에서 보여준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그런 세상을 보며 어느 민족이든 자..

손바닥 묵상 2024.04.05

손바닥 묵상 2:느헤미야 1장에서 13장 묵상

지금도 성전 터만 남아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쌓고 문빗장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걸고 이 시대는 정말 요즘으로 말하면 성령의 시대였다. 에스라 스가랴 느헤미야 학개 말라기 스룹바벨등 굴직굴직한 선지자가 많이 등장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충만한 시대이라서인지 하나님의 역사도 아주 컸다. ​ 많은 방해가 있었지만 성벽 공사도 잘 진행되고 성전 재건 방해 음모에도 두려움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모든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순번대로 성벽을 쌓아 보수를 했다. 자세히 기록한 걸 읽기만 해도 은혜가 된다. ​ 그런데 애초에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원하시진 않았..

손바닥 묵상 2024.04.04

손바닥 묵상 2 - 에스라 1장에서 10장 묵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잡혀가 70년 동안 노예로 살다가 페르시아 시대 고레스에 의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살수 있게 되고 또 성전도 건축할 수 있게 칙령을 받는다. 그러나 그 땅에 잡혀가서 노예로 살던 백성들 중 많은 분들이 이미 돌아가셨고 2세 자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한다. 그들이 노예로 살며 조상들에게 자신들이 하나님을 버려 남의 땅에 노예로 사는 벌을 받았노라고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온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건축할 때 말씀대로 바르게 하려고 무척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은 뼈아픈 고난을 당하고 난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는 걸 보면 몸에 새겨진 고난의 각인이 가장 큰 은혜라는 생각이 든다. ​ 유다와 베냐민 자손들이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자 주위 나라들..

손바닥 묵상 2024.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