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여인 중에 엽기적인 살인의 주인공인 야엘이있다.
야엘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의 아내이다.
하벨은 4장 11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왕 야빈과 전쟁 중에 있을 때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장막을 치게 된다.
이 전쟁도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해 하나님이 야빈의 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벌하시기 위해 만든 전쟁이었다.
야빈을 통해 이스라엘을 학대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가나안 군사령관 시스라가 여인의 손에 죽은 사건이다.
평소에 헤벨은 시스라와 화평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헤벨이 가나안과 화평하고 이스라엘과도 화평을 유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항상 이동하며 텐트를 치며 사는 광야에서 가족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혼란스러운 정치에 휘말리지 않고 지혜롭게 잘 대처해야만 했을 것이다.
시스라는 결국 이스라엘에게 패해 혼자 도망을 쳤고 상수리나무에 천막을 치고 있던 헤벨의 아내에게 도움을 청한다.
누군가 자신을 찾으려면 모른다고 하라는 것과 물 한 잔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4:16 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
4:17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4: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4: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4:20 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4:21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4: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항상 목초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사는 유목민들은 그 인근 나라의 동태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왜 시스라가 도망을 해 혼자 있는지 왜 누군가가 찾으면 없다고 하라고 했는지 누가 찾아올 것인지 훤히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스라와 화평을 유지해 도움을 받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스라를 환대했고 이불을 덮어 주고 우유를 주고 잠도 재웠다.
늘 야엘이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시스라에게는 배반이고 이스라엘 편에 서는 결단인데 두렵진 않았을까? 또는 모세의 장인 집안이라 그런가? 등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오늘은 이해가 되었다.
시스라를 배반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적으로 남아있는 나머지 민족들에게도 적이 되는 위험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넘겨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래서 이 땅의 전쟁이 하루빨리 종결되어야만 인근 나라들에게도 평강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이동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쟁처럼 위험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스라를 친절히 환대하며 편하게 죽고 이스라엘에게 넘겨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시스라에 대한 예의이고
이스라엘에게는 도와주는 결정적인 공을 세우는 것이 야엘이 살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숨겨줬다가 들키는 건 시간 문제이고 이스라엘에겐 적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야엘의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위기의 순간에 빠른 결단이 그 가족을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이런 경우에 잘 결단하지 못해 기회를 놓치는 일이 많다.
이 여인의 손에서 24절 말씀처럼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전쟁이 끝난 것이다.
항상 이편에도 저편에도 설수 없었던 긴 전쟁이었는데 적당한 타이밍에 전쟁이 끝난 것은
야엘이 바라보던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이었을 것이고 이 전쟁은 끝나야 한다는 신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부분이 많다.
참 결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야엘같은 눈을 가졌으면 좋겠고 야엘과 같은 결단력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야엘이 가나안과도 화평을 잘 유지하고 살았던 것처럼
잘 화평을 유지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단도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손바닥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바닥 묵상 3 - 룻기 묵상 (0) | 2024.08.16 |
---|---|
손바닥 묵상 3 - 사사기 11장에서 21장 묵상 (0) | 2024.08.15 |
손바닥 묵상 3 - 여호수아 11장에서 24장 묵상 (0) | 2024.08.13 |
손바닥 묵상 3 - 여호수아 1장에서 10장 묵상 (1) | 2024.08.10 |
손바닥 묵상 3 - 신명기 31장에서 34장 묵상 (0) | 2024.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