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이 쓴 요한 1 서 2 서 3 서는 초기 영지주의자 즉, 이단들의 위험으로부터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쓰인 서신서이다.
그 당시 이단들은 성육신을 부정하고 도덕적인 문제들이 많았으며 사회적으로도 사랑이 결여된 무리였다.
그래서 요한의 서신서는 특히 사랑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13장 34절 도 새 계명에 관해 말씀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새 계명 사랑을 말하고 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고 그 어두움이 눈을 멀게 한다 등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것임을 말한다.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의 것들은 육신의 자랑이고 하나님께 속한 것은 영원함을 말한다.
세상의 것은 지나가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함을 말한다.
이것으로 마귀의 자녀인지 하나님의 자녀인지 드러난다.
그런데 사랑처럼 어려운 계명은 없다.
우리는 사랑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육신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
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이 말씀을 지킨다는 건 우리 안에서 도우시는 성령님이 거하시기 때문이다.
지키기 어려운 사랑을 행하므로 누구의 자녀인지 안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를 증명하다는 충격적인 말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마귀의 자녀라고 사람들에게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삶도 참 중요하다.
그 당시 초기 영주 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무너진 도덕성 사랑 없음은 육신은 썩어져 버리는 것이므로 어떻게 살던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에게 말씀하는 서신서는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죽을 때 예수님 믿고 천국 가면 그만이지!라는 말씀은 틀린 말이다.
이 땅에 삶에서 사랑으로 행하지 않고 사는 것은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다고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 걸 확신한다.
왜냐하면 잘못을 할 때... 사랑이 없을 때 나에게 말씀으로 경고하시고 마음의 갈등으로 나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의 욕심을 밀어내고 사랑으로 채워가는 훈련을 하심을 느낀다.
이 땅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시길 원하시는 것이다.
유다서 24절 25절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길 원한다.
성경의 축도 중에 가장 내가 사랑하는 말씀이다.
부족한 나를 세우시고 붙들어 주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크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에게 부어지시고 치료해 주시고 귀한 그릇으로 사용해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1: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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