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삶

데살로니가 전서를 끝내며

차작가 2023. 10. 19. 10:34
 

데살로니가서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서이다.

데살로니가의 지역적 배경은 로마와 이스탄불을 지나 당시 유럽의 동쪽을 연결하는

군사용 상업용 도로망인 비아 에그나티아에 위치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로서 20만의 많은 인구가 살고 있었으며

상업에 유능한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상당이 큰 도시였다.

데살로니아가 교회가 세워진 배경은 사도행전 17장 1~9절에 잘 나타나 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할 때 경건한 헬라인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말씀을 듣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복음에 관심을 가진 이방인들을 보며 유대인들은 시기하게 되었고 유대인들은 저자에서 불량배를 데리고 와서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 앞에 데리고 가서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고소를 했다.

그 사실을 미리 안 믿음의 형제들이 밤에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피신시켰다.

이렇게 야손과 몇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대신해 고난을 받았다.

로마 정부는 소동 죄를 가장 크게 여겼다. 아마도 여러 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어 통치하기 위해선

사회를 소란케 하는 범죄를 엄중히 다뤘을 것이다.

그러나 야손과 그 형제들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상권을 장악했기에 불량배를 동원해 그들을 잡아서 읍장에게 데려갔고

그들을 로마 체제에 반역한 죄로 바울 일행을 고소했다.

그 당시 유대인은 20만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파워가 컸었다.

바울이 전하는 이가 곧 예수라는 것을 알고 모든 힘을 동원해 바울을 죽이려 했다.

바울은 이런 이유로 급하게 도시를 나와야 했게 데살로니가에서 그들과 오래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바울은 베뢰아에서 아덴으로 갔고 그곳에서 디모데를 만나 데살로니가로 보냈다가

다시 고린도에서 만나게 되었고 디모데편으로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을 듣게 된다.

바울은 디모데의 보고에 근거해 데살로니가 서신서를 쓰게 된 것이다.

즉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서신서가 쓰였졌다.

서신서에서 바울은 수차례 보길 원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너희를 사모하니" "너희 얼굴을 보고" 등의 표현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디모데를 보낸 이유를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하고 말한다.

충분히 양육하지 못하고 급하게 떠났기에 양육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에 서 있다는 보고를 디모데를 통해 받고

교회를 칭찬하며 "더욱 힘쓰라"라고 격려한다.

그러나 짧은 양육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오해를 낳았고

그것으로 인해 잘못된 행동이 생긴 것을 알고

"주의 날"을 설명하고 늘 깨어서 살 것을 독려한다.

이 깨어서 산다는 의미는 개인적의 삶과 공동체의 삶에서 개선이 필요함을 일깨우며 지적하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무분별한 성적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명한 성경 구절은

데살로니가 5장 16~17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이다.

데살로니가서는 초신자를 향한 바울의 권면이다.

그리고 재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는 서신서이다.

이 데살로니가서에서 우리가 재림을 기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좋은 해답을 주고 있다.

나는 특히 1장 3절과 8절이 와닿았다.

초입부터 가슴에 닿은 말씀이 5장이 끝나가도 좋았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바울과 실라가 잠시 머무르며 전한 말씀이 이방인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고

주위에 소문이 날 정도로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하셨다.

그들은 진정으로 믿었기에 주님의 재림도 기다리게 되었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자라야 들어간다는 말씀이 이런 이유에서인가 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소망은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를 뜻한다.

이 소망의 "인내" 여기서 인내는 끝까지 목표를 향해 달려감을 뜻한다.

주님의 재림... 이 땅에서의 나의 마지막의 때가 끝날 때까지 확신을 가지고 소망을 품고 끝까지 달려가 길 기도드린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몇 번 듣고 이런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가 된 데살로니가 성도도 이런 삶을 살아가는데

나도 부끄럽지 않은 열매를 맺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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