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절은 1절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에 대한 구체적 답변이다.
창조의 행위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가 믿음이므로 믿음 있는 사람은 창조의 사실을 믿는 것이고 창조의 사실이 믿어지는 것이 믿음 있는 사람이다.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지적설계:
창조물을 지켜보면 설계가 보인다. 설계가 증거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이 있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믿음 때문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 믿음이라는 레이더로 보이지 않는 설계자가 보이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창조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이것을 무에서의 창조라고도 한다. 없는 상태에서 말씀으로 있게 하셨다. 세상의 존재 근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말씀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창조 방식이 구속 사역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우리의 행함과는 무관한 전적으로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가 된다.
말씀은 곧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믿음으로(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이루실 약속을 찾는 레이다로) 창조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창조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신뢰하는 자만이 믿음으로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믿을 수 있다.
믿음으로 창조를 믿을 수 있다.
이는 것은 절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지 않았다. 나타난 것은 어떤 물질인가? 즉, 이 말은 현재의 세계는 절대 어떤 물질로 된 것이 아니라 절대 무에서 ( 오직 말씀으로만) 유로 창조되었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셔서 세계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이렇게 보이는 것이 보이는 원재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밝힌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말씀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이 있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신앙 역시 보이지 않는 것(무엇?)을 말씀에 근거해서 보이는 것(무엇?)으로 확신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믿음은 미래를 현재로, 불가 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의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리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보이는 것은 현재 보이는 것이고 나타난 것(시제-완료 시제)은 과거에 있었던 것이다. 즉, 과거에 존재했던 것으로 현재 것이 된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 모든 세계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창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
그런데,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같은 사실이 믿어 지는게 바로 믿음 때문이다. 과거 믿음이 없었을 때는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믿어지는 게 신기하다. 이 세상은 저절로 생겼다는 과학의 논리는 더 강력해 지고 있는데고 불구하고 말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진들의 예를 들기 전에 이 세상이 말씀으로 창조 되었다는 것을 먼저 상기 시키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 말씀만으로도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예*
해야 멈춰라. 바다야 잠잠하라. 귀신아 나가라! 등등
창조 사실로 성경은 시작한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는 믿음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다. 창조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다. 기독교가 믿음의 종교라면 창조 사실을 믿어야 한다.
3절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는 말씀대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으면 말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시는 것을 목격한 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을 통해 들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어떤 증거도 보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의심 없이 우리는 믿는다. 과연 무엇이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증거일까? 바로 믿음이다.
세상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지 않는 이유는, 눈으로 본 적이 없고,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진화론 득세: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고 살아 계시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이 종종 조롱하듯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디 한번 보여 봐라’는 것이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면 믿겠다는 것이다. 이런 말에 대해 난감해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야말로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즉 믿음 자체가 증거로 우리에게 존재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을 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내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고 확인하고자 한다. 이것이 앞서 말한 대로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것이다.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될 뿐이다.
믿음을 증명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은 남에게 보여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믿음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에 불과하다. 믿음은 나를 높여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의 실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3절에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한다.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뜻한다. 이 우주 만물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타난 것, 즉 세상에 존재하는 뭔가를 이용해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란 뜻이다. 오직 말씀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나타난 것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보이는 것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증명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는단 말일까? 그것이 믿음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믿음이 증거로서 우리에게 존재한다.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신자는 보이는 것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행함이 부족하다고 해서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이 참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면 된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세상에 대해 증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온갖 과학을 다 동원한 하나님의 창조설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을 무시하는 것이다. 아니 아예 믿음이 없다고 봐야 한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것이다.
신앙과 세상은 과학은 통할 수 있고 과학으로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믿음으로 가능하다. 이 말은 믿음이 없는 세상은 믿음이 있는 세계와 단절되어 있음을 뜻한다. 세상이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보이는 것으로 증거 되고, 보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믿음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저 증거하고 증명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보이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이 등장하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충분한 사람들이다. 믿음이 말씀의 실상으로 증거로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의심 없이 말씀이 그대로 믿어진다. 그러므로 믿기 위해 뭘 해야 하는 것은 없다. 믿음이 이끄는 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면 된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행위를 통해서 확신을 갖고자 하고, 어떤 신비한 사건들을 통해서 확인을 하려고 한다. 또한 개인의 종교적 경험을 통해서 확인하려고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믿음은 오히려 보이는 나의 행동을 신뢰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 예수님이 하신 일만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게 한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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