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해석:
1. 첫 번째는 예수를 전한다.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즉시로 복음을 전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 역시 사람의 힘이 아니라 그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본문을 보면 예수를 핍박하던 바울이 이제는 오히려 예수님을 전파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울의 변화에 대해서 놀랐다. 사람들은 사울이 변화된 것에 대해 의심을 가졌다. 그러나 사울은 더욱더 힘을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 이로 인해서 사울이 이제는 오히려 유대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할 때 사울은 제자들에 의해서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 성을 탈출한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이때부터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의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처럼 사도행전이 사도 바울의 이야기로 가득 찬 것을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그만큼 교회사에 있어서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러한 사람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 바울을 세워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려지고 사람이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진 채 보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전혀 다른 것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사람에 대한 것만 보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바울은 결코 내가 일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고린도전서 9:16절을 보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말한다. 이러한 바울의 말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바울을 바라보고 있다. 바울은 부득불 하게 된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바울이 스스로 자기 열심이 복음을 전한 것으로 여기고 '우리도 바울처럼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자'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에 없는 말을 더한 것이다.
성경에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라는 이유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사람에게서 사람을 본다면 결국 하나님은 보지 않게 되고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가려질 수밖에 없고 오로지 사람의 소리만 있게 된다.
2. 두 번째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복 받는 인생이 된다는 것 보단 오히려 예수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시작부터가 순탄치가 않았다. 예수를 핍박하는 사람에서 오히려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면 복을 받아서 그 인생이 더 순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 인생이 뒤바뀐 바울은 시작부터 사람들의 오해를 사고 의심을 받게 되었다. 전에는 같은 무리에 속해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배척받는 것은 그들이 예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해도,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게는 환영을 받으며 '당신이 이렇게 예수님을 믿게 되니 우리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힘이 납니다'라는 격려를 받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데 바울은 신자들에게는 의심과 오해를 받고 유대인들에게는 죽임을 당할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바울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걸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봄날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때로는 괴로운 인생이 될 수 있고 고통을 받는 인생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삶을 결코 편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편하게 살았을 텐데 예수님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는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신다. 우리가 악하게 살아가도록 그냥 버려 두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간섭을 하심으로써 죄에서 나오도록 하신다. 이것을 위해 우리를 칠 수도 있다. 그것이 곧 고통으로 오는 것이 아닐까?
또 때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로 세우셔서 그를 사용하실 때, 그 삶을 고통스럽게 하셔서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믿는 모습을 보이게 하심으로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실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자기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핍박과 상관없이 편안한 자기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연관됨으로 인해서 자기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이고 그 결과는 예수님을 위한 죽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과 연관된 인생을 핑크빛으로만 생각한다. 예수님 때문에 내 인생이 복을 받고 잘 될 것만 기대를 한다. 이것이 과연 옳은 생각인지를 스스로 성경을 보면서 확인해 보길 바란다.
결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예수님은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불의와 악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의와 진리로 산다는 것은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의심을 받기도 하는 것이고 때로는 나를 몰아내고 거부하는 소외감까지 당할 수 있는 것이 신앙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세상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예수를 찾는다. 이것부터가 이미 잘못된 시작이다. 예수님이 약속하지 않는 것을 기대하는 것, 이것부터가 예수에게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십자가는 수치의 자리이고, 멸시와 의심과 오해의 자리이다. 주님을 우리를 그 자리로 부르시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을 안다면 그러한 자리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크기에 설사 내가 주님으로 인해서 죽는다 할지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길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 사랑이며 은혜이다. 본문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주님께 부름을 입은 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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