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 묵상 중에 찬송가 543장"어려운 일 당할 때"가 생각이 나서 찬양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근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예수님은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갑자기 이 찬양이 떠올랐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제자들과 똑같았을 것 같다.
현재를 사는 나도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심을 믿지만 항상 이해하지 못할 것 투성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 성령님을 보내주심 이 모든 걸 아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제자들은 당연했을 것 같다.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질문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너희 중에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왜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이 슬프게 느껴질까..
나도 똑같이 질문을 못했을 것 같다.
예수님이 슬프셨을까.. 답답하셨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말씀이다.
제자들도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긴 한데 예수님의 말씀으로 막연한 걱정과 염려가 밀려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이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며 자신이 떠나지 않으면 보혜사가 오시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떠나시면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을 상상력을 가지고 그려보면 장엄하고 엄숙하고 슬프고 그런 느낌이 든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항상 너희와 함께 하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실 거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16: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어린 양과 같이 죽으시고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드린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질고와 슬픔과 허물을 대신 지어주신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를 혼자 버려두고 떠나지 않으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 안에 주셔서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게 해 주신 분이시다.
성령님이 내 안에 내주하셔서 항상 함께 하시므로 우린 혼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뻐할 수 있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예수님이 세상을 이 기신 것처럼 우리도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이미 이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우린 담대할 수 있다.
무슨 환란을 만나더라도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담대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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