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1 - 베드로 후서 묵상

차작가 2024. 1. 28. 12:30

오늘은 거짓 선생과 거짓 선지자를 다룬 2장을 나누고 싶다.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 강단에서 목회자가 말씀 선포할 때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설교를 한다면 거짓 선생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강단에서 뿐만아니라 작은 성경 모임이나 이런 블로그에서 말씀을 나눌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혹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잘못된 글을 올릴까 염려되어

여러 참고 도서나 신학적으로 검증된 목사님의 설교를 참고를 하며 신중을 기해 나누고 있다.

그리고 묵상할 때 도움받은 참고 도서나 설교는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 논란이 되는 구절은 신학 교수님들도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나누는 건 피한다.

그래서 항상 오늘 묵상한 성경에 삶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블로그에 올리기 전엔 남편이 목사여서 반드시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점검받고 난 뒤에 올리고 있다.

2: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2: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2: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2: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키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거짓 선생과 다름이 없다.

교회에서 말씀 선포할 때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사용한다든지

강대상에서 의도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기 위한 설교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하나님 말씀을 사용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하나님 말씀을 잘 모르는 연약한 약점을 이용하는 것

곤고한 가운데 있는 지체를 미혹하게 해서 뜻을 이루는 것은 유혹하는 행위이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 누구나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잘못을 저질러 습관이 되어버리면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연약한 지체들을 겁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설교를 가끔 듣곤 한다.

성경이 말하자고 하는 의도와 상관없는 말씀 선포는 굳세지 못한 영혼을 유혹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말씀 선포나 거짓 선생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영적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된다.

항상 성령님이 도우셔서 이런 거짓에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들의 잘못은 그들이 치르겠지만 말씀을 읽지 않은 우리도 잘못이 있기에 그 댓가는 각자가 치뤄야 한다.

왜냐면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미혹되지 않게 말씀 앞에 나오도록 인도하셨지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앞에 나아가 영적 분별력을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바른길을 떠나 미혹되어 발람의 길을 따르는 것과

하나님 말씀 앞에 나아가는 순종을 거부하는 우리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셨는데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만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탄을 이길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예수님이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것처럼 우리도 말씀밖에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날마다 더 교활해져가는 사탄의 미혹을 이길 힘은 말씀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