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51

날개를 펴다

까만 점박이가 생겨 자세히 보니 아무래도 병이 든 것 같아 밑동만 남기고 잘라냈다. 이사 온 기념으로 구입한 몬스테라라 속상하지만 할 수 없었다. ​ 몬스테라는 잎이 풍성하고 예뻐 마치 날아가는 나비 같다. 물을 많이 준 날은 잎끝에 물을 동그랗게 내놓고 그 옆에 앉아서 나도 물 한 잔 너도 물 한 잔 ​ 세잎이나 잘라내고 나니 화분에 춤추던 나비가 사라져 허전하다. 그런데 어느 날 돌돌 말은 애벌레 두 마리를 살며시 드러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껍질을 열고 잘 나오나 관찰하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밑동만 남아 가망이 없어 보였는데 새잎을 내어 주었다. ​ 어느새 활짝 잎을 열어 나비 두 마리가 춤을 춘다. 아마도 아침마다 나와 함께 물을 마시고 심었었나 보다. ​ ​

나의 시 2023.12.13

목자

설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의지로 교회를 처음 결정을 해야 했고 목장도 소속되어야만 했다. 아직 넓은 곳에 가면 바닥을 보고 걷는 게 편하다. ​ 목장에서 황 목자님을 만났고 설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 굳이 내가 설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살짝 잡아주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밀어주었다. ​ 억만 평만큼 넓은 교회에서 목자로 인해 강대상 정도는 편한 공간이 되었고 그리고 강의실의 한평으로 확장되었다. ​ 아직 뒤를 돌아보면 낯설어 익숙한 한두 분이 보이면 얼른 안아 달라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찬양과 설교가 선포되는 공간.... 강의를 듣는 공간이 편안해졌다면 중요한 건 가진 셈이다. ​ 그래서 나도 목자님에게 설수 있는 한 평이 되어 주고 싶다. 아직 한우..

나의 시 2023.12.07

어릴 적 아르바이트

앞집 아지매 하얀 봉투를 들고 들어오신다. "정아 니 글 읽을 줄 알제!" ​ 또랑또랑 읽어 드리면 심각해지셨다가 웃으시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 이시기도 하는 아지매 다 읽고 나면 "니 아버지 밥 안 묵어도 배부르겠다" 하셨다. ​ 할머니 고모 집 가실 땐 수도요금 전기요금 각종 편지 읽는 아르바이트 타임 어릴 적 귀양살이 시골집 몇 년은 우는 동생 달래주기 동생 머리 묵어주기 ​ 한여름 모깃불 피우고 옥수수 먹으며 대문만 바라보며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 아빠 기다리는 서글픔 밤 부엉이 우는소리 듣고 배고픈 마음 붙잡고 잠이 들곤 했다. ​ 그런데 그때 아버지는 진짜 밥 안 먹어도 배부르셨을라나... ​

나의 시 2023.12.06

풍랑이는 날

오해는 관계를 깨고 상처를 남긴다. 풍랑이 이는 날이면 던지면 고요함은 찾아온다. ​ 그래도 풀리지 않는다면 탓하지 말자. 이것도 지나면 별일도 아닌 사소한 것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마음을 두지 말자. ​ 안 풀리는 걸 잡는 것보단 과감하게 바다에 던져야 잠잠해지는 바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풍랑이는 바다 같은 이길 나는 그렇게 풍랑을 받아들였다.

나의 시 2023.12.05

나빴다 할머니는

늦은 밤 시골집 부엌은 나에겐 귀신의 집 빗장이 쳐져 있는 부엌문을 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뒷문이 벌컥 열리면 어쩌나 시커먼 아궁이에서 용이 나오면 어쩌나 물주전자는 보이지 않고 컴컴한 부엌에 보이는 건 이상한 그림자뿐 저녁에 물주전자 머리맡에 놓고 자라고 하던 할머니 말 들을 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 물주전자 들고 뛰어나오느라 부엌문 안 닫았다고 할머니에게 혼이 나고 나빴다 할머니 그냥 아기인데 그냥 갖다주면 안 됐었나. ​ 이유 모르는 귀양살이한 어린 나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억울하다. 사업 실패한 큰아들 잘못을 나에게 풀었었나 보다.

나의 시 2023.12.05

위로를 건네다

황무지같이 황폐한 그 땅에 위로를 건넨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재앙이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닌지 처음부터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절망하며 연명하는 건 아닌지 그렇지 않다고 위로를 건넨다. ​ 어느 생명도 귀하지 않는 건 없기에 황무지같이 말라있는 그 마음에 위로를 건넨다. ​ 한 발자국 은혜가 없인 못 걷는 삶은 모두가 마찬가지 한 걸음씩 내딛다가 보면 산소망이 보이고 그 소망이 진정한 위로임을 위로받은 내가 위로를 건네본다.

나의 시 2023.12.04

소음

하루 종일 팽팽 돌아가는 에어컨 소음 무례한 이웃의 시끄러운 소음 주차장에 난동꾼이 틀어 놓은 음악이 아닌 소음 이웃집 층계 뛰어다니는 소음 싸움이 났는지 경찰이 출동하고 험상궂은 이웃은 차를 홧김에 들어 받는 소음 비가 마법처럼 모든 소음을 잠재웠다. 오랜만에 바깥에 소음이 사라졌다. 급하게 이사해 6개월 계약한 달라스의 첫 아파트를 떠나기 며칠 전 비가 일주일 동안 내리자 고요함이 소음을 덮고 한 달 일찍 이 집을 떠나게 되는 기적 같은 이사는 나에게 마법같이 찾아온 고요함이다.

나의 시 2023.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