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169

데살로니가 전서 묵상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니야의 수도로서 로마와 현대의 이스탄불인 도시를 거쳐서 유럽의 동쪽을 연결하는 당시 군사용 상업용 도로망인 "비아에그나티아"에 위치한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신약시대에는 약 20만 명이 살고 있었으며 헬라인들이 많았으나 발달된 도시에는 늘 유대인 사업가들이 있었으며 특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의 이름은 카산더 장군의 부인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누이인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또한 데살로니가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그곳에 살고 있던 약 6만 명의 유대인들을 죽인 곳이기도 하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이곳에 어떻게 바울이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바울은 최소한 세 번..

골로새서 묵상

골로새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이다. 주후 60~62년에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썼으며 에베소서도 비슷한 시기에 썼다. 두기고가 바울로부터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레몬서를 받아 각 목적지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골로새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가 많고 번화한 도시였다. 바울이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 3년이나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주변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바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는 아니지만 간접 설립자라고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사역하던 에바 브라는 바울의 제자였는데 골로새 교회를 개척하였고 빌레몬, 오네시모, 아킵보등이 교인이었다. 바울은 골로새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

빌립보서 묵상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이다. 빌립보는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고 간 마게도냐지방의 첫 도시였으며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유럽 대륙의 첫 교회였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역의 동쪽 에게해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빌립보에서 바울은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치료한 것으로 인해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힌 후 거기서 만난 간수를 구원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그들은 쓸 것들을 공급하며 도왔다. 바울은 빌리보 교인들의 그런 정성에 감사히 여겨 빌립보서를 썼으며 다른 편지에서도 그 사실을 언급했다. ​ 그러기에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내용이 교리적이라면 빌립보서는 간증적이고 실천적이..

에베소서 4장에서 6장 묵상

오늘은 4장에서 6장까지 묵상했다. 그중에 4장 25절부터 나오는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에 대해서 나누고 싶다. ​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여기서 거짓은 "거짓말" 그리고 "욕망을 따르는 삶"을 뜻한다. 거짓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사람이 된 우리는 거짓에 머무르지 않는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이것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일깨어 주시고 진리 안에 있도록 인도하시고 22절 말씀처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고 오직 새롭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을 버리고..

에베소서 1장에서 3장 묵상

에베소서는 사도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이다. 로마제국 아시아 지역에 주요 도시인 에베소는 해상과 육상의 무역로가 교차되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터키 해안지역에 있던 항구도시이다. 특히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하나로 뽑히는 풍요의 여신 아데미신전이 있어서 많은 순례자들이 각 지역에서 모여들었기에 신전 주변에는 숙박업과 기념품을 파는 자들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 사도행전에 따르면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3년을 머물면서 목양한 교회이다.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바울이 오래 머물렀기에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관계를 지닌 교회이며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가 그곳에서 사역을 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바울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 에베소서는 다른 ..

갈라디아서 4장~6장 묵상

오늘은 6장을 나누고 싶다. 갈라디아 교회는 복음으로 세운 교회였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의 유혹으로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바울은 다른 복음에 빠진 갈라디아의 교회를 향해 접근한 방법은 다시 참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 선생과 같은 역할을 감당한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을 다시 설명하며 성령을 따라 살라며 말한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이후로 성령을 따라 살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라 한다. ​ 그럼 성령으로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는 삶이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라고 말한다. 5절에 나오는 짐은 단수이고 2절에 나오는 짐은 ..

갈라디아서 1장에서 3장 묵상

갈라디아는 어느 특정한 도시나 장소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1차 선교여행에서 소아시아 지역에 속한 어느 지역을 지칭한다. 이런 면에서 특정 교회에 쓰인 다른 서신과 차이가 있다. 서신 내용이나 사도행전과의 연계성을 통해서 볼 때 갈라디아서는 사도바울의 서신들 중 가장 먼저 쓰인 것으로 판단된다. ​ 이 지역의 교회들은 유대주의자로 불리는 거짓 교사들로 인해 신앙이 흔들리고 있었다. 갈라디아서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유대주의자라고 불리는 무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대주의자들은 일반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초기 기독교 내에 있었던 특정한 유대인 무리였다. 그들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인이 되려면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거나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그들은 율법을 온전..

고린도 후서 6장에서 13장 묵상

고린도교회의 설립 배경을 알면 고린도서 전체를 이해하기 쉽다.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베뢰아에서 전도하자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와서 소동을 일으키자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와 나누어져 인도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아덴으로 인도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디모데와 실라를 아덴으로 오라고 전하며 아덴에 혼자 남겨진다. 아덴은 그리스 아테네를이다. 그곳에서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를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을 모시는 신전이 가득한 걸 보고 참지 못하고 혼자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그곳에서도 쫓겨나 고린도로 옮겨가게 된다. 로마는 식민지에 종교에 관대한 정책을 폈으나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에 대해서 강력한 정책을 폈다. ​ 고린도라는 도시는 로마제국에 의해 재개발된 항구 도시였다. 상..

고린도 후서 1장~6장 묵상

고린도 후서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도중 마케도니아에서 썼다. 내용으로 보아 고린도 전서가 쓰인 것과 시간차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서신교환을 통해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해결했음을 알 수 있다. ​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편지에서 그들을 방문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음을 밝힌다. 그러나 방문이 성사되지 않았고 디도를 통해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다. 디도가 그들에게 전달한 이 서신은 신약 성경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 편지로 너희에게 근심하게 한 것"이라는 7장 8절 때문에 근심의 편지 또는 비통한 편지라고 불린다. 디도로부터 고린도 성도들이 회개하는 소식을 전해 받은 바울은 기쁨을 전함과 동시에 자신이 교회에 대해 안도함을 알리기 위해서 고린..

고린도전서 11장에서 16장 묵상

고린도전서 13장을 오늘 나누고 싶다. 13장은 너무나 유명한 사랑 장이다. 13장 이전에 12장에서 다룬 내용은 성령의 은사에 관한 내용이다. 12에서 많은 은사들이 있지만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마지막 31 절에 기록함으로 마감하고 있다. 더 큰 은사가 무엇인지 의도적으로 사랑장으로 이어짐으로 보여준다. 은사는 사랑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은사의 목적은 섬김이다.​ ​ 13장 1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이 없이는 어떠한 섬김도 소음과 같이 된다. ​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목 박혀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곧 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은사는 소음과 같다. 3절에 보면 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