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마루에 서서 하늘을 볼 때
빨랫줄에 걸린 이불에 반쯤 가려진 노을과
앞집 아지매 집 굴뚝에서 솔솔 올라오는 밥 짓는 냄새
마을 저 끝에 사는 정준이 오빠네 강아지 짖는 소리
그러나 밭에 물 주러 갔다가 깻잎 따 온다던 할머니는 감감무소식
불을 켜야 하나 말아야 하는지 모르는쯤에
저 멀리 할머니의 구부정한 허리가 보이고
문에 들어서자마자 쩌렁쩌렁
"불을 안 켜고 와이라고 있노!"
"아고 내가 못 산데!"
"바빠 죽겠는데 해는 왜 이리 짧노!"
차마 배고프단 말을 하지 못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한 게 많은 나로 만들어 버리는
묘한 할머니의 목소리에 속이 여린 나는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여름에서 가을이 되어갈 즘엔
할머니가 끝물로 뜯어오신 깻잎 향과
매운 고추가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와
장독대에 구부정하게 올라서서 된장을 뜨며
깊은숨을 내쉬는 할머니 모습이
나의 고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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