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알 수 없다는 걸 말하듯 사라의 인생에도 기적이 일어났다.
사라가 폐경이 되어 아이를 가질 수 없을 때 노인이 아이를 낳고 젖 먹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단정 지을 수 없고 끝까지 가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도 물론이지만 자신의 인생도 단정 지을 수 없기에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사라는 사자 셋이 아들을 주리라고 하셨을 때 내가 무슨... 아들을 하며 웃었다.
그런데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들을 주시고 난 뒤 네 씨인지 내 씨인지 분명히 구별하신다.
하나님은 분명하시다.
또 한편으로는 믿음이라는 게 나의 확신에서 나온 믿음인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인지도 분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난 아들 이스마엘에도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비록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지만 아브라함에게서 난 생명을 귀하게 보시고 축복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으로 주신 생명 이삭은 분명히 하나님의 것이라고 명시하신다.
똑같이 아브라함에게서 났지만 이삭 만이 아브라함에게서 난 아들이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시기에 주신다.
21: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나는 오늘 말씀이 인내, 기다림 하나님의 뜻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인지 내가 가진 확신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
믿음의 주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할 필요성이 있었다.
때로는 자기 확신을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현제 아브라함처럼 이스마엘을 붙잡고 하나님의 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봤다.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보면 분명히 그런 경우가 많았었다.
잘 분별하기 힘들다면 시간을 두고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이 명확하게 보여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말씀으로든 환경으로든 사라의 경우와 같이 동일하게 하나님은 알려 주시리라 생각한다.
참 여운이 남는 묵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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