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은 인간이 살며 겪는 다양한 마음을 표현한 시여서 인지
묵상하면 감정이입되고 사람의 마음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력이 있다.
저자와 내가 어느 순간 하나가 되어 울고 웃고 하다 보면 어느덧 말씀을 통하여 해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편 정도 오늘 묵상하며 대부분 탄식시가 많았지만 나누고 싶은 시편을 22편으로 정했다.
22편은 다윗 시 시일 수도 있고 알다시피 다윗에게 헌정된 시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저자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 도움의 손길도 끊어지고
하나님마저도 없는 것 같은 공허하고 외로움 가운데 던져져 있는 상황임을 시를 통해 볼 수 있다.
1절부터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 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반복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하신 말씀"엘리 엘리 라마 사박 다니"라는 독백과 같은 고백이다.
그리고 저자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에 서 있을 때 앞뒤 사방을 둘러보아도 도와줄 손길이 보이지 않고 막막한 순간이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보편적인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 하나님마저도 침묵하실 때가 수도 없이 많았던 삶이었다.
그럴 때는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신 것만 같고 아무 데도 계시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며 기도하게 된다.
우리와 저자가 바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고통 속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비웃는다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적막감이 쌓이게 된다.
22: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 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22: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22: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22: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하나님 믿는 사람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네가 믿는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시는지 보자!"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바라본다면
이만큼 큰 외로움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도 침묵하시는 이 상황에서 아무도 위로해 주는 이 없는 저주 받은 인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님의 부재를 깨뜨리기 위해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4절과 5절에서 보면 과거에 주께 문제를 의뢰했을 때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처럼
자신을 구해 달라고 수치와 조롱을 받지 않게 해 달라고 부르짖는다.
이 기억이 찬양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 것이다.
22: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22: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22: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즉,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고 하나님이 인도하셨던 일들을 기억하며 찬양에 이르게 한 것이다.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던 시인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과거로 돌아가 회복되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찬양하게 되었다.
그리고 믿음의 고백을 21절과 같이 한다.
22: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시제가 과거로 끝나는데 이 시제는 단순한 과거형 시제가 아니다.
예언적 과거 시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즉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이루어주셨을 고백하는 시이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라는 고백은
믿음의 고백이며 믿음의 선포이다.
뿐만 아니라
22: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이 믿음의 고백을 전하며 시를 끝맺는다.
엄청난 믿음의 고백의 시였다.
나도 이런 믿음을 가지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지난 금요예배 기도 시간에 나의 원통함과 마음의 근심을 하나님께 토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네가 하는 것도 아니고 네 남편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이 말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누었다.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나에게 하신 말씀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남편에게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주일을 보내며 순간순간 이 말을 기억하며 힘을 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시편 22편의 저자처럼 온전한 믿음이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부르짖는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절대로 힘이 되어 주지 못한다.
사방에서 마귀는 조롱하고 비방할 때 하나님께 찬양하며 나아가는 것 그 순간에 과거에도 인도하심을 기억하게 되고
현실은 여전히 어렵지만 믿음을 가지고 주실 것을 믿는 믿음! 정말 하나님은 나에게 이걸 원하시는 것이다.
그 믿음은 우리 부부를 넘어 자녀에게까지도 믿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믿음의 자리에 나아가기가 아직은 힘들지만 이 저자의 믿음이 옳다는 걸 알고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믿음의 괘도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번 이 말씀을 주시며
"네가 하는 것도 아니고 네 남편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라고 온전히 믿으라 하시는 말씀 같았다.
세상에 믿을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힘이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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