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우스 땅에 살던 사람인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하고 정직했던 사람이다.
욥은 혹시 자신의 자녀들이 마음으로 죄를 범했을까 봐 그 자녀의 수대로 번제를 드릴 정도였다.
그 말은 정직함을 따를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욥은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시험했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려 찾아왔지만 오히려 욥을 정죄하는 그런 내용으로 전개가 된다.
과거에는 욥기를 읽으면 아픈 사람을 두고 조목조목 네가 죄인이라고 지적하는
친구들이 놀라웠고 또 아픈 와중에도 일일이 답을 하는 욥도 놀라웠다.
현실감이 없어서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정죄하는 사람들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이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항상 욥기를 읽을 때는 욥을 나와 동일시만 했지 그 친구들을 나와 동일시한 적이 없었다.
인생을 살다 보니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고.....
때로는 억울한 누명을 쓸 때도 많았고
지금처럼 투병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라는 욥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네가 가는 길을 너는 잘 모르지? 그러나 나는 너의 길을 알아. 그래서 너를 단련하는 거야.
단련 한 다음에 네가 정금같이 되어서 나오게 하는 게 나의 계획이야. 그리고 그것이 너의 길이야.
그러니 힘들더라도 잘 참아. 왜냐면 너의 길에는 정금 같은 축복이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거의 마지막 편에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에게도 말씀하시고 욥에게도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주제 파악해라!" 하는 말씀 같았다.
그 말씀은 42장 8절과 9절에 설명되어 있다.
친구들에게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고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면 기쁘게 받을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친구 너희는
우매해서 즉 무지해서 너희 죄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한다.
그 말은 욥은 하나님을 알므로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지만 너희들은 나를 아예 모르기 때문에
번제와 죄 용서도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아는 척 하나님을 이야기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난체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욥은 번제를 친구들을 위해서 드렸고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다.
이 대목에서 친구들로부터 능욕과 멸시받은 욥을 마지막에 세워 주시는 위로의 말씀 같았다.
나는 욥기서를 통해 입만 살아있는 욥의 친구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장로님이 아플 때 마음속으로" 저렇게 사시니 벌받으시겠지" 할 때도 있었고
사사건건 괴롭히는 권사님이나 집사님을 보며"저렇게 하셨으니까 아프셨겠지"! 할 때도 있었다.
사모라 말할 수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정죄하고 판단했었다.
예수를 믿어도 병들 때도 있고 예수를 안 믿어도 병들 때가 있다.
그 누구도 남의 불행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
친구가 처음에는 위로하러 왔겠지만 결국은 말씀을 가지고 정죄했고 판단했다.
입만 살은 예수쟁이와 같았다.
그 친구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젠 아픈 사람을 대할 때는 함께 울어 주고 위로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간단한 말씀을 나는 때론 놓칠 때가 많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