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 19: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지 마라 - 누가복음 7장 29-35절

차작가 2023. 11. 8. 13:31

29절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절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 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1절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32절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에 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절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도입:

자기 중심적인 예

나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노력을 안 해서 그래. 내가 창업하면 설마 망하기야 하겠어?

내가 해도 저것보단 잘 하겠다. 저 사람은 운전을 왜 저렇게 해. 나만큼만 하지.

고개를 혹시 끄덕끄덕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심각한 인지적 오류에 빠져있다.

1) 내가 중앙선에서 불법유턴 한다면 중요한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옆 차가 신호위반하면 운전자 양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당신이 하면 불륜이다’는 식으로 나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쉽다. 내가 남보다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심리가 숨어있다.

이처럼 무조건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평가하는 사고방식으로 인한 인지적 오류를 ‘자기중심적 사고’ 혹은 ‘자기 본위적 편향(self-serving bias)’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매사에 남들보다 자기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더 유리한 관점에서 보게 되는 일종의 편향적 사고의 결과들이다. 남들은 담배로 인해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지만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흡연자들의 심리이다.

2) 자기는 괜찮고 남은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설문 결과가 하나 있다. 미국 사람들에게 ‘누가 천국에 갈 확률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더니, 클린턴 대통령은 52%, 테레사 수녀는 79%, 하지만 자기 자신은 87%라고 응답했다. 남들보다 내가 더 선량하다고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 스스로 사업능력이 다른 동료에 비해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86%가 평균 이상으로 자신이 더 능력자라 대답한 반면, 단지 1%만이 평균 이하라고 자신을 평가했다고 한다. 모두 자기중심적 사고의 한 단면이다.

3) 똑같은 상황이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유독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배경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닐까?

우리 인간들에게는 사회적 지위가 높고 권한이 커질수록 자기중심적 사고가 더 강화되는 습성이 있다. 권한이 낮은 권력 결핍 그룹은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의식한 반면, 권력 그룹은 자기 내면의 시각을 우선시한다. 즉 자기중심적 사고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본문: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남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말을 자주 쓴다. 내 스타일이 아니야.

여기에 자기 스타일만 고집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곧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였다.

1.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

7:29절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7:30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 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0절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요한을 자신들보다 잘난 자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신앙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자신들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고 자부했다. 때문에 세례를 요한이 베풀고 자신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다. 자신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을 요한이 중심이 되고 자신들은 겉으로 밀려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세태를 장터 아이들의 놀이 비유를 통해서 꼬집고 계신다.

2. 이 세대를 마치 장터에서 어린아이들 놀이 비유

1) 32절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

2) 아마 예수님 당시에 아이들이 장터에서 놀면서 이런 놀이를 했던 것 같다. 두 편으로 나누어서 한쪽 편에서 피리를 불면 다른 편의 아이들은 피리 소리에 맞추어서 춤을 추고, 다시 다른 편이 장례식처럼 곡을 하면 또 다른 편의 아이들이 슬피 우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서로 상대편이 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음으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하여도 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 세대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즉 우리가 그렇게 산다는 의미이다.

이런 어이 아이 같은 사람들이 바로 자기 중심적으로 살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다.

3.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1) 요한에 대해서(33절):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광야에서 살았던 세례 요한의 삶은 매우 금욕적이었다. 일반인과는 아주 다르게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고, 낙타 가죽옷을 입고 살면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전파했다. 이런 세례 요한의 삶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요한이 자신들처럼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은 것을 두고 귀신이 들렸다고 매도한 것이다.

이들은 옳고 그름을 가지고 요한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한의 삶을 귀신 들린 것으로 매도했다.

2) 예수님에 대해서(34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반면에 예수님은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셨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고 욕을 하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예수님도 그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에 대해서는 먹지 않는 것을 꼬투리 삼아 비난 한 것이고 예수님은 먹은 것을 꼬투리 삼아 비난한 것이다. 도대체 이들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먹어야 할까 먹지 말아야 할까? 이것이 이 세대의 사람이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을까? 이들이 자부하고 있었던 의를 의로 인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 실천에 힘썼던 자신들의 의가 인정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높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들을 가까이 하셨고 그들의 의에 대해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를 거리끼게 되었다. (고전 1:23) 십자가는 자기들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은 내 스타일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자기 중심적이었고 자기들만의 스타일을 추구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결국엔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 버리고 영생을 얻지 못했다.

비록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배척했지만, 그런데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있게 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35절에서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한다. 그것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자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의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이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것이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복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누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좇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한 구원 방식을 스스로 마음에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사람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분명 하나님의 자녀가 존재한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결과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지혜는 하나님의 자녀로 옳다 함을 얻는다고 하신 것이다.

4. 그래도 지혜는 증거 된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일은 증거 된다.

2) 삭개오

삭개오라는 세리장에 관한 것이다. 세리장은 한 마디로 당시에 강탈의 대명사였다. 그는 사람들을 협박하여 세금을 과하게 뜯어내어 자신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곤 했다. 그는 로마 정부에 내야 할 세금을 실제보다 많은 액수로 불려 말하고 차액을 자신이 취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이리저리 갈취하고 다녔다. 모든 사람이 세리를 미워했지만 이들의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잇는 방법이라곤 전혀 없었다.

삭개오는 이런 ‘나 우선’의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는 돈 많고 교활하며, 냉혹하고 냉담하며, 잔인한 인간이었다. 이런 유의 인간은 결코 바뀌는 법이 없으며 오히려 세월이 지날 수록 더 악해지고 부유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삭개오의 이야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기적적인 변화가 이러난 것도 알 것이다. 예수님은 여리고를 지나 여행하시다가 삭개오에게 그의 집으로 가서 식사할 수 있겠느냐 물으셨고...그 때 이후 삭개오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 늙고 완고한 세리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서, 그를 자기 죄를 사해주시는 분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마음에 무언가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 탐욕스럽고 냉담하고 자기 중심적인 ‘나 우선’의 욕심쟁이가 가난한 자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이전에 늑탈한 것을 네 배로 갚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3) 바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이며, 유대교에 대한 비판은 모세의 권위와 율법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모두 용서 할 수 없는 범죄행위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철저한 적개심을 갖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근절시키려고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이처럼 그의 양심이 자기 중심적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따라서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당당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론하는 스데반을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일 때에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데 여겼고 그리스도교를 박해 하는 일에 지도자로서 앞장 섰던 것이다.

그런 그가 다메섹 선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자기가 핍박했던 예수를 증거하게 된다.

4)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말한 대로 사람은 끝까지 자기 의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의를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혜가 옳았다는 것은 하나님 자녀가 있음으로 해서 증거 된다는 것이다.

이 세대의 사람은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옳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과 다르면 틀렸다고 하면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받아들인 것도 십자가가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할 수 있다. 십자가는 내가 중심이 되는 것도 나를 높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이 자리에 나와 있다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증거이다. 예수를 주로 믿는 우리가 지혜의 증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의 증거물은 교회도 세상도 내 중심으로 바라보지 않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론:

구원 사역은 말씀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통해 성취된다.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자신을 부정하고 전적으로 말씀을 쫓아 행하면 위대한 사명을 수행할 수 있다.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지금 이 시대는 자기 중심적 사고 방식에 빠져서 살아 가는 시대라고. 이런 자기 중심적인 삶을 벗어 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를 붙드는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