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이사야 1장에서 10장까지 묵상

차작가 2023. 9. 28. 11:21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된 아주 긴 책이다.

성경이 66권인데 흥미롭게도 이사야서도 66장으로 되어있다.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1장에서 39장이고 두 번째는 40장에서 66장이다.

이사야서 1장에서 39장은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한 심판과 비난 메시지를 담고

40장에서 66장은 "용서와 구원" 이스라엘의 회복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구약과 신약의 함축된 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사야서는 구원이 능력이신 여호와만을 믿고 의지하도록 촉구하는 예언서이다.

이것이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사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이다.

이사야의 이름과 이사야서의 주제가 같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사야서는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기도 하다.

이사야가 활동한 시기는 웃시야왕이 사망한 해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히스기야 왕까지 활동 시기가 넓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이렇게 네 명의 왕이 재위하는 동안 활동했다.

이스라엘이 서서히 세력이 감퇴하던 시기에 활동했다.

주전 740년부터 약 680년 정도의 역사적 배경은 앗수르 제국의 세력이 점점 팽창해져가서

주위 나라들에게 위협적인 제국이 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주변 작은 나라들이 앗수르를 대항하기 위해 동맹군을 형성해서 세력을 모으고 있었다.

북 이스라엘의 베가왕과 시리아의 르신왕이 남유다 아하스에게 함께 동맹군을 형성해서 앗수르에 대항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남유다가 이를 거절했다.

오히려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며 북 이스라엘을 침략해 줄 것을 앗수르에게 제안했다.

그래서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 에브라임이 주전 734년에서 732년경에 전쟁을 일으켰다.

이것을 시리아 에브라임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때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앗수르와 동맹을 맺지 말라고 충고 하나 아하스 왕이 듣지 않았다.

7:7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아하스 왕이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지 못한 이유는 그 당시 앗수르 제국은 잔혹 무도하기로 유명한 제국이었기 때문이었다.

앗수르가 휩쓸고 간 나라는 마치 지옥과 같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산 채로 껍질을 벗기는 등 여자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잔혹하게 살해하는 그런 살인자와 같은 나라였다.

믿음이 없는 아하스는 그래서 앗수르의 디글랏 벨레셋 3세에게 도움을 청하여 앗수르의 속국이 되고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였다.

오늘은 1장에서 10장까지 묵상했다.

작년에 "이사야서를 끝내며"에서 단 한 절만 나눴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10장 별로 하나씩 나누기로 정했다.

그중에 오늘은 1장을 나누고 싶다.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1절에서 이사야가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선지자로 활동하였음을 이야기한다.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2절 말씀은 이사야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인지 처음부터 알 수 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을 하는 장면은 대부분 웅변하듯이 선포하거나 꾸짖는 어투로 말을 하는데

이사야는 마치 시의 한 구절처럼 선포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자식처럼 양육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부드러운 외침이지만 2절부터 마음속에 "훅" 하고 들어왔다.

3절에 이어쓰는 소도 나귀도 다 주인을 아는데 이스라엘 백성만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한탄하고 있다.

이어서 4절에는

1:4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라고 호소한다.

그런 백성들이 성전에 와서 많은 번제를 드릴지라도 받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음을 말하며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11절에서 12절에 말하고 있다.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느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려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심지어는 15절 이후에는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신다며

그 이유는 기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은 피가 가득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실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행을 하고 정의를 구하고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고 한다.

그러면 주홍같이 죄가 붉을지라도 눈같이 희여지리라 말씀하신다.

21절 이후에는 죄로 가득 차 있는 그 성읍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공의가 살아있고 고아와 과부를 돕고 고관들은 뇌물을 받지 않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그 당시 사회는

1: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은은 찌꺼기가 되고 포도주도 순수한 맛을 잃은 사회가 되었다.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고 더 이상 재판은 정의롭지 못하고 고관들은 뇌물을 받아 도둑이 되어버렸다.

신실하던 성읍은 창기가 되어서 이제는 살인자들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해 보응하시기를 결심하셨다.

그래서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고 혼잡물을 다 제하여 순결하고 순수한 은으로 만드실 것을 작정하신 것이다.

재판관들도 타제국의 압제를 통해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할 것이며 하나님의 의가 살아있는 의의 성읍이며 신실한 고을로 불리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리고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해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돌아올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시는 것이다.

1: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그리고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들도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이것이 1장에서 말하는 메시지이다.

2절부터 가슴이 뜨끔했지만 1장을 끝날 때는 안도감이 있었다.

나도 죄인이고 멸망 받을 존재이지만 공의로 구속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살던 주전 700년 전이나 지금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여전히 과부와 고아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정치가들은 자기의 유익만 챙기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재판도 휘게 하고 뇌물을 받고 거짓 증인이 되고

포도주의 맛이 변하기 보다 포도주가 독주가 되어 있는 세상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예배보다는 예배를 이용하는 정치판이 되어있고 헌금과 구제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손에 피가 가득한 그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다.

그 죄의 끝은 버림받는 것이고 멸망이다.

그럴지라도 그 죄를 돌이킬 때 혼잡물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청결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죄가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기회가 있는 것이다. 심판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으로 나를 돌아보고 혹 내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정의로우심을 거부한 적이 없는지 비추어봐야 한다.

내 손에 악이 가득한 상태로 손을 들어 기도하지 않는지....

그럴 때 하나님은 나에게서 눈을 가리시고 듣지 않으심을 기억하며 항상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함을

다시 한번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심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