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이를 데리고 산책하다 보면 강아지끼리 뭔가 통하는 게 있는지 한번 보고도
걸어오는 강아지가 자신을 공격할 것인지 같이 놀아도 될 강아지인지 한눈에 알아보는 걸 많이 본다.
왜냐하면 초롱이가 걷다가 갑자기 걸어오는 강아지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재빨리 걸어가면 상대 강아지는 공격성이 있는 강아지이고
까불며 걸어오는 강아지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하려는 걸 보면 친구 해도 되는 강아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눈에 알 수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가끔 이런 초롱이가 부럽다.
나도 만나는 사람이 위험한 사람이라 피해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 알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보다 낫다고 하더니 오늘 묵상 내용 중에 등장하는 나귀는 발람 보다 나았다.
22:33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성경 속에서 동물이 말을 하는 건 유일한 내용이 바로 발람의 예언이다.
모압왕이 발람을 불러와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하자 돈을 보고 따라가다가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서 있는 걸 보고
나귀가 3번이나 피하자 발람이 3번 떼리며 만약 자신의 손에 칼이 있었더라면 너를 베었을 거라고 말하는 장면이 22장에 기록되어 있다.
지난 묵상 편에서도 나눈 본문이지만 항상 말씀은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발람이 보지 못했던 주의 사자를 나귀가 본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일어난 일이다.
나귀가 발람에게 30절과 같이 말을 하자 하나님이 발람의 눈을 열어 칼을 들고 서 있는 주의 사자를 보게 하신다.
결론은 나귀의 눈을 열어 주의 사자를 보게 하셨으므로 발람이 살수 있었고
모압 발람 왕 앞에서 발락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일을 하게 된다.
21장에서 불 뱀 사건뿐만 아니라 근동지역의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인근의 화제의 백성임을 짐작할 수 있다.
소문으로 듣던 이스라엘이 근처에 오자 발람 왕도 긴장해서 이런 기획을 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은 건 아니지만 복채를 받고 제사를 드리고 점술을 하는 발람은
이 사건에 끼어들고 싶지 않을 만한 일이 아니었을까라는 합리적인 상상을 할 수 있다.
묵상 중 발람의 태도를 보며 삶의 우선권을 어디에 두고 사는 냐에 따라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나 하나님이 경고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따라가는 걸 보면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압왕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으니 어는 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땅의 권세 왕의 명령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는 걸 가볍게 여기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동물도 가야 할 길 안 가야 할 길을 본능으로 아는데 사람이 동물보다 못한 존재라는 걸 나도 때로는 공감한다.
하나님의 명령...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시는 건 하나님 말씀뿐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만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지 않는 것이고
또 내가 살길이라는 생각을 나귀를 통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손바닥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바닥 묵상 3 - 신명기 1장에서 10장 묵상 (0) | 2024.08.06 |
---|---|
손바닥 묵상 3 - 민수기 31장에서 36장 묵상 (0) | 2024.08.03 |
손바닥 묵상 3 - 민수기 11장에서 20장 묵상 (0) | 2024.07.31 |
손바닥 묵상 3 - 민수기 1장에서 10장 묵상 (0) | 2024.07.30 |
손바닥 묵상 3 - 레위기 21장에서 27장 묵상 (0) | 2024.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