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장에서 14장까지 묵상했다.
그중에 11장을 나누고 싶다.
11장에 들어가기 전에 9장과 10장의 말씀을 잘 이해하면 11장 말씀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물론 1장부터 모두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호세아서에는 에브라임이라는 명칭이 자주 등장한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남으로 야곱이 죽기 전에 축복할 때 장자인 므낫세도 축복을 하지만
에브라임을 장자인 므낫세보다 앞세웠다(창 48:20, 신 33:17).
그래서 에브라임은 장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인물이기에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 상징적으로 불리는 것이다.
마치 축복받을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 곧 우리가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과 같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죄를 언급할 때 하나님이 "에브라임아"라고 부르신다.
이스라엘은 9장 15, 16절에서
9:15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9:16 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함을 9장과 10장에 걸쳐 기록하고 있다.
에브라임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시고 여러 나라 가운데 떠도는 자가 되리라는 심판을 말씀하신다.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0: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징계를 선언하신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 공의를 심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공의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그 공의를 자신을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애는 사랑을 뜻한다.
그런데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자신을 위해서 공의를 심고 인애를 사랑을 거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땅을 뒤집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묵어있는 땅을 뒤집어 고르게 하는 때 곧 이때가 여호와를 찾을 때고 하나님을 찾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공의가 비처럼 내려서 악을 갈아엎는다는 의미이다.
악을 갈아엎을 때 죄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 죄는 거짓이라는 열매인데 거짓 열매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의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4절에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질 때 백성들이 의뢰했던 산성들이 무너지고
그들이 벧엘에서 우상 숭배했던 것이 새벽에 망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벧엘은 그 당시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소였다.
새벽은 모두 잠든 시간이다. 즉, 예상치 못한 시간에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11장에는 백성을 버리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 주고 있다.
에브라임이라는 인물은 먼저 믿어 축복을 더 많이 받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복을 경험한 내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나 자신을 의뢰하고
나의 경험이나 내가 가진 지식이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 자체가 벧엘에서 우상숭배하는 행위와 같음을 깨닫게 하셨다.
내가 세운 공의 내가 가진 거짓된 사랑을 묵은 땅을 뒤엎는 것 자체가 회개이다.
그럴 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비처럼 나에게 내리는 것은 거짓 열매를 버리는 것이고 죄를 거두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오시는 것이다.
11장에 또 한 번 에브라임의 죄 즉 우리의 죄를 가르쳐 주신다.
11: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안아 주시고 걸음마를 가르쳐 주시고 나를 고치는 줄 깨닫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있다.
그런 나에게도 4절에 보면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버리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다.
백성들의 죄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는데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셨는데도 깨닫지 못했다.
7절에서 9절에 보면
11: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11: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백성들은 불러도 돌아오지 않고 일어나는 사람도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어찌 너를 놓겠느냐",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라고 말씀하신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동과 고모라가 망할 때 함께 망한 도시 이름으로 멸망의 상징이다.
그 사랑이 너무 처절함을 느꼈다.
그런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하나님 마음속에서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을 느끼게 하셨다.
그 사랑은 그런 악한 행위를 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버릴 때
마음을 돌이켜 묵은 땅을 뒤집어 우리가 맺은 죄의 열매를 고백할 때 하나님은 이 불타는 사랑으로 우리를 버리지도 놓지도 않으시고
그 맹렬한 진노를 거두시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이 사랑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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