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를 떠올리면 눈물의 선지자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만큼 눈물이 많은 선지자였다.
그런데 나는 극한 직업 예레미야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감히 누구라도 흉내도 내지 못할 힘든 인생을 산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전체 구조는 이스라엘의 멸망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1장에서 25장에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의 말씀과 25장에서 45장에
예레미야의 예언과 고난으로 나뉘고
46장에서 51장은 멸망과 이방인들을 향한 예언이다.
그리고 마지막 52장은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로 되어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를 읽기 전에 그 시대적인 상황을 잘 알려면 열왕기하 25장 27-30절을
읽어 보면 도움이 된다.
이사야도 고난을 많이 당하고 결국은 톱으로 죽임을 당한 선지자라
정말 가여웠는데 예레미야는 정말 이사야를 능가하는 고난을 많이 당한 선지자라 생각된다.
이사야가 므낫세 왕 때 죽고 예레미야는 므낫세 왕 때 태어난 선지자이다.
북 이스라엘에 최고의 악한 왕으로 아합이 있다면 남 유다의 가장 악한 왕으로는 므낫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악한 왕 때 태어나고 선지자로 활동했던 자체가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보다는 다소 파괴적이고 이스라엘 멸망을 예언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사역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마음도 알겠지만 예레미야가 너무 불쌍하고 외롭고 고단한 사역을 감당하는 모습을
통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예레미야는 아사돗이라는 지역에 제사장들이 모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배척받고 죽음의 협박도 받고 웅덩이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한
예레미야를 보며 눈물이 많이 났다.
나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탄식하고 심판한 이유는 많은 성경 구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것이고
세 번째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타락이다.
많은 부분에서 은혜를 받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던 말씀은 24장 5절~7절 말씀이다.
하나님은 결국은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심고 뽑지 않고 자신이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백성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결국은 하나님이 회복시킨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고 39장 10절 "사령관 느부사란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두고 그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은 52장 13절에서 16절에서 다시 설명되고 있다.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이스라엘 땅에는 가난한 자가 참 많았었다.
이스라엘 규례에는 49년 다음 해인 50년째에는 모든 땅을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희년 제도가 있다.
그런데 그들의 욕심으로 인해서 당연히 돌려주어야 할 땅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스라엘 땅에는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성전과 왕궁도 불사르시고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도 불살랐고 성벽도 헐었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갔지만
가난한 백성은 남겨두어서 애초의 가난한 자의 것이었던 포도원과 땅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셨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참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때로는 하나님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신다는 뜻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으며
또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다음에 통독할 때는 세분화해서 자세히 이 부분을 나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