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묵상에 이어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복에 대해서 묵상했다.
왜냐하면 내가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복을 위한 기도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었다.
또 성경에는 예수 믿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 주시길 기도할 때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그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면 그 복이 나에게 돌아온다고 쓰여 있다.
때문에 복의 중요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길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즉 아브람을 하나님이 특별히 부르실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아브람을 꼭 집어서 우상을 섬기는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이유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아브람은 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저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불교 집안에 자라서 평생 동안 보살로 살아온 할머니 곁에서 자라온 나를 이유 없이 택하셔서
예수 믿게 하신 것도 결국은 복을 주시기 위한 것과 같다.
그리고 복을 주시는데 아브람 자체가 복이 되게 하신다.
곧 아브람 = 복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복을 주셔서 아브람의 이름이 창대하게 널리 알려지게 하셨다.
이 복은 점점 더 확장되어 표현하는데
아브람이 곧 복이므로 어떤 사람이 아브람을 축복하면 하나님이 그 축복하는 사람도 복을 주시고
반대로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람 자체가 복 덩어리이므로 아무도 아브람을 함부로 대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고 물론 저주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아브람은 신분이 복받을 만한 신분도 아니데 과분한 복을 주셨다.
에녹처럼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간 그런 뛰어난 복을 받을 만한 존재도 아니었고
노아처럼 당대에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하던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다.
만약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시지 않았더라면 나처럼 자란 사람은 희망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희망이 없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복을 주시며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감사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너 또한 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아브람의 복은 애굽으로 내려가서도 계속되었다.
아내를 누이라 속여서 아내를 바로 왕에게 팔아넘긴 그였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이 복이므로 바로의 집에 오히려 재앙을 내리셨다.
그 재앙으로 자신의 아내를 찾을 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지만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 낙타 등도 얻었다.
바로 입장에서는 하나님은 복도 내리시고 재앙도 내리시는 신이며 자신의 백성은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심을 경험한 것이다.
아브람의 입장에서는 "아! 나는 이런 존재이구나!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특별하게 생각하시는구나!" 하며
그동안 하나님을 몰랐었는데 하나님은 바로 보다 크시고 재앙도 내리시고 축복도 내리시는 이런 대단한 분이심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결국은 바로 가 준 그 모든 재물은 하나밖에 없는 혈육 롯과 다투는 원인이 되었고
결국은 그 소유로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이 다투는 원인이 되어 조카와 헤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분명히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는데 아브람은 조카와 아버지와 함께 떠났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재물을 사용하셔서 롯과도 헤어지게 하시고 아버지 데라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란 땅에서 죽게 하셨다.
결국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명령한 그 말씀 하신 원점대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은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즉 일방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큰 복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를 순종의 방향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오늘 복을 묵상하며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그 택하심
즉 나를 부르신 것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를 택하시고 순종의 자리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바닥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바닥 묵상 1 - 출애굽기 1장에서 10장 묵상 (0) | 2023.09.16 |
---|---|
손바닥 묵상 1 - 창세기 41장에서 50장 묵상 (0) | 2023.09.16 |
손바닥 묵상 1 - 창세기 31장에서 40장 묵상 (0) | 2023.09.16 |
손바닥 묵상 1 - 창세기 21장에서 30장 묵상 (0) | 2023.09.16 |
손바닥 묵상 1 - 창세기 1장에서 10장 묵상 (0) | 2023.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