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 37: 내가 진리이다(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 요한볻음 14장 6-7

차작가 2023. 11. 10. 12:06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절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본문:

1. 진리의 사전적 뜻

진리(眞理)의 일반 사전적인 뜻은 '참된 도리'이다. 진리(眞理)는 사실이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명제, 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사실 혹은 참된 이치나 법칙을 뜻한다. 참, 진실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고 보편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이 항상 진리가 아닌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2700년 전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였고 바다 끝에 가면 떨어질 것으로 믿었다. 그 당시 그것이 진리며 참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었다. 따라서 모두가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더 정확한 뜻은 사람의 생각, 지식, 견해 등에 상관없이 언제나 변함없는 정확한 사실을 진리라 말할 수 있다. (위키백과)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아야 한다) 금이 가치 있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진리를 찾는 목적:

공자는 ‘"아침에 도(사물의 당연한 이치)를 들으면 이로써 수양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므로, 그 날 저녁에는 죽어도 가(可) 하다. "라고 말했다. 진리나 법칙을 발견하면 더 말할 수 없이 기뻐한다.

철학의 가르침: 임마누엘 칸트(18C)는 철학의 물음을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진리를 찾으려 할까? 물질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존재했으며 왜 존재하는지? 사람은 어떤 존재이며 앞으로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사물과 사람이 다른 점은?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진리를 찾게 되는 궁극적인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가?

3. 진리에 대한 성경적 견해:

‘진리’라는 말은 헬라어 ‘알레데이아(ajlhvqeia)’를 번역한 말이며, 히브리어로는 에메트(tma)’이다. 에메트는 견고하고 변하지 않는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진리’라는 말이 하나님께 대해 사용될 때(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이는 그의 본성 혹은 의지의 성질, 즉 일관성 및 불변성을 나타낸다.

1) 진리는 하나님의 특성(characteristic)이다. 진리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천성(nature)이다. 하나님은 진실(reliability) 하시고 온전(integrity) 하시기 때문이다.

야곱의 고백: 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사 65: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시 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 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2) 에메트(tma)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표현이므로 하나님의 계명과 동의어이다.

시 119: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시 119: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시 119: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구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3) 주의 말씀이 육신이 된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셨기 때문에 진리가 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쓰인 진리며 예수님은 살아있는 진리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 주신 분이시다.

요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오셨다.)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진리(죽으심과 부활하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진리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잠 16: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바울의 ‘진리’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엡 4: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는 사도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실현된 것을 전제한 것으로, 여기서 ‘진리’란 복음을 가리킨다(갈 2:5, 14; 골 1:5).

요 1:17 율법(정죄하고 생명이 없는)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용서)와 진리(생명을 살리는)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 예수님을 찾으면 진리를 찾을 것이요 진리를 찾는 자는 예수님을 찾을 것이다. 진리는 결코 예수님을 떠나서 있을 수 없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진리를 찾는 사람은 결국엔 예수님에게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4. 진리는 우리를 어떻게 하는가?

진리는 절대 잘못 인도하지 않는다.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 자체이시고 이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

예수를 만나고 그 진리를 알면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 (진짜 믿음의 성도는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다) 외로움에서 자유롭게 된다. 때로는 병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공허함과 상실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적대감과 증오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이런 진리 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한 우리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시 40:1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시 57: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5. 진리를 아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봤을까? 그들은 병 고침을 봤다. 자신들의 이득을 본 것이다. 은혜와 진리는 보지 못했다. 이것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 세상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고 살까? 낮아지신 예수님에게서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보고 있을까? 독생자의 영광을 보고 살까?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진정 은혜와 진리로 보여진다면, 우리는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이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영광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8절의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는 말씀을 보면 신자는 독생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를 봄으로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산다고 했지만 결국 그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적 행위로 그쳐 버리고 말았다.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기에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잘못됨을 범하고 있는지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세상이 은혜로 보지 않은 것이 은혜로 보이고 영광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영광으로 보여진다면 그분들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에게서 은혜와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3) 교회가 진리 가운데 행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 진리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세상은 교회의 교회됨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 이 말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듣는다고 해서 그것을 참된 교회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하나님이 높임을 받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진리를 알지 못한 세상이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이처럼 진리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도 알지 못한 세상이 눈에 보이는 교회의 자그마한 착한 일을 가지고 칭찬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거대한 착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세상의 칭찬과 참된 교회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교회됨은 오직 진리로 증거 된다. 진리를 떠나 있는 교회는 교회라 할 수 없다. 그것은 교회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종교단체일 뿐이다. 이점을 생각하며 교회로 모이는 우리의 관심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진리에 거하는 것은 성경을 많이 읽거나 외우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많이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진리에 다스림을 받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에 다스림을 받는다는 그 증거가 형제 사랑으로 보이는 것이다.

진리가 무엇일까? 오직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십자가의 도가 아닐까? 십자가의 도는 오직 예수님의 피만 의로운 것으로 부각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 즉 진리 앞에 선 인간이라면 그 어떤 일에서도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않게 된다. 의로운 행함이 있는데 감추고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내세우고 자랑할 의가 없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악함을 깊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의로움이 큰 기쁨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처럼 진리가 기쁨이 된 신자라면 형제를 대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죄인 됨을 알기에 형제보다 나을 것이 없음을 생각할 것이고, 자랑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바라보고 형제를 대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러한 마음의 신자는 형제에게서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보게 될 때 그것이 큰 기쁨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모든 마음을 두고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이다. 진리가 나를 살렸다는 이 사실 하나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소원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럴 때 교회의 교회다움은 자연 증거 될 것이고, 우리는 진리로 인해 무한한 기쁨을 얻게 된다.

진리는 스스로 의인이라 하는 자들에게는 쓸데없는 것이지만 죄인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일 수밖에 없다. 죄인을 향해 모든 죄를 없게 하셨다고 외치는 소식이야 말로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안겨주는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오직 진리로 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