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절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어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29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 일러라
본문:
<매튜 에먼스 이야기- 제대로 된 표적을 맞춰야 한다>
2004년 올림픽 50미터 소총 3자세 경기에서 매튜는 금메달을 단 한 발만 남겨 두고 있었다. 심지어 정중앙을 맞추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8.1점만 맞아도 금메달을 따고도 남을 점수였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서 아주 드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엉뚱한 표적을 쏜 것이다. 2번 레인에 서서 3번 레인의 표적을 쏘고 말았다. 표적을 제대로 맞추었지만 엉뚱한 표적인 까닭에 점수는 0점이었고 결국 매튜는 금메달은커녕 8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예수님을 따른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표적을 겨냥하고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언젠가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때 사람은 둘로 나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 그리고 들어 가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본문 21절 말처럼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이다.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한 사람들이 불평한다. 22절처럼. 자기들은 분명히 주님의 이름으로 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23절에서 그들의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아예 그들을 모른다고 하시면서 떠나라고 하신다. 그들에겐 충격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천국에 갈 줄로 알고 있다가 그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상심할까? 미국에 비자 신청했다가 영주권 신청했다가 거부 당할 때 말할 수 없는 실망을 하게 되는데 천국을 가지 못하는 사건은 그보다 더 큰 상실감 좌절감마저 들것이다. 이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사격 선수 매튜 에먼스 이야기처럼 표적을 잘못 두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열심은 있었지만 잘못된 표적을 향해 살면 그 삶은 마지막 종착역은 허무하게 끝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그저 단순한 예가 아니다. 실제로 반드시 벌어질 일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시기 위해 두 건축자의 예를 들어 주신다.
한 건축가는 단단한 바위 위에 기초를 세우고 집을 짓고 다른 건축가는 모래 위에 기초를 세우고 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된 후에 홍수가 나고 비바람이 불었는데 바위 위의 집은 무너지지 않은 반면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져 내렸다. 예수님은 바위 위에 집을 지은 건축가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시고 반면에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건축가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지혜로운 건축가는 마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한 사람이고 어리석은 건축가는 행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고 하셨다.
두 건축자의 진가는 홍수나 비바람에 의해서 가려진다. 홍수나 비바람이 불기 전에는 두 사람이 지은 집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다. 그러나 홍수가 나고 거친 비바람이 불자 그 집의 진짜 가치가 가려지게 된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도 홍수나 비바람과 같은 어려운 환경이나 마지막 심판 때에 결국은 가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두 건축자 모두 열심히 집을 지었다. 그런데 기초를 선택한 것에서 차이가 났다. 바위는 기초 공사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일단 기초가 완성되면 웬만한 풍랑이나 빠른 유속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해 준다. 반면에 모래나 흙은 기초 공사가 쉽다. 그렇지만 바위에 비해 그리 안전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단 자기의 생각대로 살기를 원한다, 왜냐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와는 일정 거리를 두고 자신의 생각대로 믿고 결정하고 싶어 한다.
‘팬 인가 제자인가’라는 책을 쓴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 얘기:
어느 성도가 편지 한 통을 목사님께 보냈다. 내용은, 목사님 설교가 맘에 안 들어 교회를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전화를 했다. "제 설교가 싫어서 교회를 떠난 신다고 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사람이 당황하고 어색하고 횡설수설 해명하다가 본심을 이야기했다. "목사님의 설교가 제 삶을 뒤흔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라고.
‘예수님은 믿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라는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주일날 예배드리러 가는 것은 좋다. 하루 세 번 식사 기도 빠지지 않고 할 수 있다. 차 범퍼에 예수 물고기 스티커 붙이고 다니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사서 부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제 삶이 방해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또 그대로 행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제자로는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런 뜻이다.
주일 예배 후 제자훈련한다면, 얼마나 빨리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을까? 그런데도 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서 이런 과정들을 기쁘게 감수한다. 이렇게 형성된 신앙을 바탕으로 우리 삶이 변화되고 우리는 바위 위에 기초를 하나씩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반석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면 모래는 무엇일까? 인간이 반석으로 여기고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모래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모래는 바로 자기 생각대로 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행함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려고 하고, 행함을 통해서 자신이 지은 집이 크고 튼튼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이것이 모래 위에 자신을 세워가는 것이다. 이것이 어리석음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처럼 자신의 행함 위에 자신을 세우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에서 우리를 건지는 것은 예수님의 의로우심이지 우리의 행함이 아니다. 우리의 행함이 마치 단단한 땅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그럼, 어떻게 반석 되신 예수님 위에 우리의 인생의 집을 건축할 수 있을까? 바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 즉, 순종이다.
그런데, 순종이 쉽지 않다. 왜냐면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거나 접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접어야 하는 행동을 조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젠 인터넷 그만하고 공부해라!’라고 말했을 때, 아들이 아버지께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하고 있는 인터넷을 계속하고 싶지만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인터넷 접속을 끊어야 한다. 이것이 조정이다. 이런 조정의 단계를 거쳐야 아버지 말씀대로 공부할 수가 있다. 따라서, 조정이라는 단계가 없으면 순종도 없다. 그런데, 조정이 쉽지 않다. 왜냐면 사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조정은 순종을 준비시킨다.
산상수훈의 거의 모든 내용들이 우리 생활에서 조정이 필요한 것들이다. 바로 이런 조정들을 함으로써 비로소 천국 백성으로서 삶을 살게 되는 것이고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마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했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는 말씀에 우리는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지금까지 원수를 미워했던 생각을 버리는 것이 조정하는 것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라는 말씀에 우리는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비판하고자 하는 욕망과 남을 업신 여기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조정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라는 어떤 조정이 필요할까? 우리의 믿음을 바꾸라는 것이 조정이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획기적인 조정 없이는 순종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획기적인 조정이 마치 바위 위에 기초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왜냐면 예수님 때문에 이제는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살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조정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단지 매 순간마다 일어나는 나의 욕심 때문에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이다.
그럼, 하나님 뜻에 맞춰 조정하게 하는 motive가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편 119:167 에 보면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사랑이다. 예수님이 ‘어느 계명이 큰 계명일까?라는 질문을 하는 율법사에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절대로 우상숭배를 할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언제나 하나님을 나의 삶 속에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존중할 것이다.
로마서 (10:9)의 말씀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야고보서에서는 말씀하고 있다. 죽은 믿음이 어떻게 우리를 살릴 수 있겠는가? 이런 죽은 믿음은 결코 우리를 살릴 수 없다.
따라서 신학자 본 훼퍼는 믿음과 순종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보았다. "믿는 자들만이 순종할 것이며 순종하는 자들만이 믿게 될 것이다."
때로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속고 있을 때가 있다. 내가 믿음이 좋은 줄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믿음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는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 알 수 있다.
말씀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잘 조정하고 있는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 후 이 세상을 마감할 때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모른다고 하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착하고 충성된 자야 수고했다. 이제는 영원히 안식을 얻어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
요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따라서, 견고한 신앙을 원한다면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 우리의 삶을 조정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세상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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