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초점: 각 땅의 특성을 이야기 하고 열매 맺지 못한 이유를 증거한다.
도입:
요즘 나의 관심은 사람은 왜 잘 안 변할까? 왜 열매 맺지 못할까?이다. 요한복음 15절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통해 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를 생각해 봤다. 그것은 포도나무가 엉뚱한 열매를 바라는 것과 가지에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 역시 왜 우리는 신앙의 열매를 잘 맺지 못하는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본론:
1. 땅의 종류는 4가지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 가지이다. (결실 하는 땅과 못하는 땅)
2. 길가에 뿌려 진 씨 (4, 19) (3-9: 비유, 10-18: 천국비밀이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19-23:
해석:
13: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해석: 19절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길가는 간단하게 숲 속의 길을 생각하면 된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생긴 길이다. 거기엔 풀도 자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씨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딱딱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위에 씨가 뿌려졌다고 하신다. 씨가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새가 와서 먹어버린다고 한다.
왜 씨가 못 들어 갈까? 땅이 딱딱해서도 그렇기도 하지만 마음의 입장에서 볼 때 마음이 받아 들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바로 왕의 강퍅한 마음) 어떨 때 마음이 받아들이기 어렵나? 마음이 열리지 않나? 무관심해서 그렇다. 관심 없는 곳엔 마음이 가지 않는다.
따라서, 길가에 떨어진 씨가 말하는 것은 관심의 문제이다.
오늘 제목처럼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말씀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마귀에게 쉽게 먹잇감이 된다고 하신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 관심이 없는 3가지 이유를 보면,
첫째: 그들은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만큼 말씀(복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즉, 말씀(복음)보단 다른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복음을 삶 자체 대신에 삶의 일부로 악세서리 처럼 간주한다. (언젠가) 필요하고 시간이 되면 복음을 언제든지 받아 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그들은 속고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출석, 예배에 참석하고 다른 크리스천들과 교제하는 것이다. 마음과 삶의 변화는 의미가 없다. 그들에 대한 종교는 삶이 아니라 형태와 의식의 문제이다.
그들은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했으며, 말씀이 그들 위에 떨어졌다. 그러나 닫힌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말씀에 유의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그들은 관심이 없고 무관심하며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도 인생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길가 밭은 뿌려진 것을 악한 자에게 빼앗긴다. 씨가 뿌려지지 않았다면 악한 자에게 뿌려진 것을 빼앗기며 살아가는 상태인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악한 자가, 뿌려진 것을 빼앗는 것은 뿌려진 씨가 그만큼 가치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한 자도 알고 있는 씨의 가치를 정작 밭이 모르고 있다. 그래서 씨를 빼앗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빼앗긴다는 것조차 의식을 못한다. 이러한 밭은 악한 자에게 대항해서 씨를 지킬 수 없다.
그동안 하나님 말씀과 복음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면 이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관심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3. 돌 밭에 뿌려진 씨 (5,6, 20,21)
13: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13: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해석:
13: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내 생각 중심의 문제:
말씀으로 기뻐했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어려울 때 넘어진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들을 땐 기뻐했다가 같은 성경에 쓰인 조금 부담스러운 말을 들으면 시험에 든다는 의미이다. 즉, 예수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했다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엔 부담 느끼는 것을 말한다. 왜 이렇게 될까? 그것은 말씀을 내 생각대로 내 중심대로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돌밭의 뿌려진 씨는 ‘내 생각, 내 중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여전히 내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내 중심대로 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일부 지역에는 석회석 층(Limestone)이 있다. 씨앗이 이 땅에 떨어지면 뭔가 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석회암은 표면 아래 햇빛으로부터 비와 열을 받는다. 따라서 거기에 떨어진 씨앗은 신속하고 극적으로 싹이 난다. 그런데 뿌리가 없다.
이 사람은 극적인 전환을 보인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결정을 내리고 변화된 삶과 빠른 성장의 본보기가 된다. 그러나 변화는 한 시즌에만 지속되며, 연장 된 시즌에도 지속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게 된다.
왜 그럴까?
그는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그는 기독교의 교리와 원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는 말씀의 감동적인 기쁨과 인생을 개혁하려는 그의 결정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는 부지런한 연구와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내 뜻 , 내 생각대로 하기만 원하는 것이다. 바로 자기 중심적인 문제 이다.
자신의 생각과 뜻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삶의 시련과 박해에 견딜 수 있는 영적 힘이 거의 없다. 예전의 세상 친구들이 뭐라고 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내 뜻과 생각에 따라 판단하고 있다면 돌밭에 있는 씨와 같다. 여전히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에 대해서 알고자 하지 않고 그런 수고도 하지 않고 있다면 여전히 돌밭에 떨어진 씨로서 조그만 시련에도 금방 무너지게 되어있다.
지금까지 여전히 내 생각이나 내 뜻이 중심이 되어 살아왔다면 내 생각 내 중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절대로 결실을 맺을 수 없다.
4. 가시 밭에 뿌려진 씨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해석:
13: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care)와 재물의 유혹(deceitfulness-기만)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말씀은 듣지만 세상의 염려(걱정도 되지만 관심의 뜻도 있다) 와 재물의 유혹으로 인해 결실을 맺지 못한다. 세상의 염려는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재물의 유혹을 받는 이유도 재물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이렇듯 말씀보다도 세상이나 재물에 더 우선 순위를 두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가시밭에 떨어 진 씨가 말하는 것은 우선 순위의 문제이다.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세 번째 이유가 바로 우선 순위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가시는 그들의 삶에 더하여 말씀을 받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말씀은 단순히 세상에 덧붙여 질 뿐이지 말씀이 전부가 되어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바꾸도록 허락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인생의 수집품에 추가하려고 한다. 그들은 그분을 그들의 사소한 부분에 불과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말씀은 항상 숨 막혀 죽게 된다.
가시는 "이 세상의 염려"(마태 복음 13:22)이다. 사람의 마음이 세상의 관심사에 있을 때,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말씀 혹은 성령의 것에 있지 않는다.
가시는 "재물의 (유혹) 기만"(마 13:22)이다. 세속적 인 것은 부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부의 기만이다. 재물은 여러 면에서 사람을 기만한다.
a. 재물은 사람을 자신감 있고 자립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그를 이 세상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끼게 한다. 그러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부르짖을 수 없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b.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지키고 보호하며 점점 더 많은 것을 만들겠다는 충동과 열정을 불러 일으킨다. 하나님과 말씀의 것들을 중심으로 점점 덜 집중하게 된다.
c. 재물은 하나님의 축복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잘못된 생각으로 이끌 수 있는데 가령 가진 자는 축복 받은 것이고 갖지 않는 것은 축복을 받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물질 세계에서 삶의 필수품을 약속 하셨지만 그분의 위대한 축복은 영적인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관심과 재물의 유혹 등에 우선 순위를 두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가시나무에 떨어진 씨와 같다.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는 한 절대 결실을 맺을 수 없다.
5. 이런 땅들이 아니면 결실하게 되는 좋은 땅이다.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해석: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어떻게 듣고 깨닫게 될까? 위의 3가지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오직 예수님이다.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면 관심의 문제가 해결된다. 예수님 중심으로 살면 내 중심의 문제가 해결된다. 예수님을 우선순위로 두게 되면 우선순위의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을 마음에 바르게 영접한 사람이 좋은 옥토와 같은 땅이고 이 땅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예수님을 벗어나서 맺는 열매는 바른 열매가 아니다. 길가 밭이고 돌 밭이고 가시떨기로 가득한 밭에 지나지 않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떨어져 생명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의 모습은 엉터리지만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열매는 맺어진다. 그래서 신자는 성령의 역사를 믿으면서 내 힘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생명에 속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고 그가 바로 좋은 땅이다.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이 살아계심으로 된다.
결론: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이다. 그리고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이 있다. 결실은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었을 때 자연히 맺어진다. 신앙의 열매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에게만 맺어진다. 과연 말씀을 듣고 깨닫는 신자에게서 맺어지는 열매가 무엇일까?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는 자신의 죽음의 자리에서 확실하게 알게 된다. 죽음의 자리 밖에서는 육신을 기준으로 해서 은혜를 평가하게 된다.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이 주어진 것을 은혜로 여길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 즉 저주에 갇힌 자가 자신의 실상임을 알게 되면 은혜는 자신을 저주에서 구출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것이 말씀에 의한 깨달음이다.
따라서 말씀에 의한 결실은 상한 심령이되어 주께 나오는 것이다. 너덜너덜한 걸레와 같은 자신의 속 실체를 보면서 도덕과 윤리로 포장한 채 그럴듯한 인간으로 행세했던 모든 것이 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생존에 붙들려살아감으로써 말씀의 존귀함까지 무시한 채 염려와 유혹 속에 살았던 자신을 보게 되면서 천국 가겠다는 것까지도 욕망이고 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애통과 회개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예수님이 함께 하심으로써 새롭게 탄생되는 좋은 땅이다.
예수님을 삶 가운데 온전히 받아 들여 관심의 문제, 내 중심의 문제, 우선순위의 문제가 해결되어 많은 신앙의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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