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열 처녀 비유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1절에서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천국에 대한 것이다. 즉 열 처녀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천국은 이와 같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일반적으로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가서 종교적 예식을 마치고 해가 질 무렵에 신부를 데리고 신랑의 집으로 돌아오는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신부를 데리고 돌아오는 신랑 일행을 신부의 친구들이 등을 들고 나가서 노래와 춤으로 맞이하도록 되어 있다.
본문에 보면 신랑 일행이 돌아오는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신랑을 기다리던 열 명의 처녀들은 모두 졸며 자기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는 소리가 들리고 자고 있던 열 명의 처녀들은 각기 등을 준비하고 신랑을 맞으러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다섯 명의 처녀의 등불이 꺼져가기 시작했다. 기름이 다 된 것이다.
등불이 없이는 신랑을 맞이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신부를 위한 들러리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다.
그래서 그들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친구들에게 자기의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나눠달라고 사정을 한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기름을 같이 쓰기에는 부족할 것 같다고 하면서 기름을 나눠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
기름을 준비 못한 다섯 처녀가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옴으로 준비했던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혀 버린다. 후에 들어가지 못한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애원하지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는 냉정한 말을 들어야 했다.
세상의 시각에는 인간적이지 못한 처사로 보일 수 있다. 다섯 처녀가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그들의 실수라고 해도, 어쨌든 원인은 늦게 온 신랑에게 있다. 신랑이 제 시간에만 돌아왔다면 기름이 부족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황을 감안해서라도 문을 열어주는 것이 타당할 수 있으며, 또한 그동안 신랑을 기다리느라고 수고한 것을 봐서라도 문을 열어주어 잔치에 참여하도록 해주는 것이 인간적이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말한 대로 열 처녀 비유가 ‘천국은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천국은 인간적 도리나 인간관계와는 상관이 없는 곳임을 알 수 있다.
◉ 깨어 있으라 ◉
13절에 보면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이 비유의 결론인데 예루살렘 멸망을 앞두고 있는 당시의 사람들이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와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누구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산다면 멸망의 때에 천국으로부터 거부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같은 방식의 삶을 미련한 것으로 말하고, 반대로 기름을 준비한 방식의 삶을 지혜로운 것으로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지혜로운 것은 깨어 있는 것이고 미련한 것은 깨어 있지 못한 것으로 구별된다.
이 비유를 보면 기름을 준비한 것을 깨어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열 처녀 모두 신랑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졸고 잤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깨어 있다는 것은 졸지도 자지도 않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랑이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말한 대로 깨어 있는 것은 기름을 준비한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름을 기도, 또는 믿음, 봉사, 헌금 등으로 해석하여 기도를 열심히 하고 믿음으로 봉사하고 헌금 생활하는 것을 기름을 준비하는 신앙생활, 즉 깨어있는 것으로 말하며 열심 있는 교회 생활을 독려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비유의 본질을 벗어난 헛된 말이다.
신랑을 기다리는 자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신랑이 올 때를 알고 있었다면 그 시간에 맞춰서 등불을 들고 나갈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에게 신랑이 오는 시간이 되면 깨워 달라고 부탁을 하고 마음 놓고 잘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신부를 데리고 오는 신랑을 반기는 것이라기보다는 들러리인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자세이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는 신랑이 돌아오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신랑을 맞이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심으로 신랑의 혼인을 축하하며 신랑을 반기는 마음이다.
만약 신랑을 반기는 마음이 없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면 그것은 외식이다. 신랑을 반기는 마음, 즉 본질이 빠져 버린 채 형식만 있는 외식인 것이다. 오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본질이 빠진 채 형식만 있는 외식적 신앙생활을 깨어있지 못하는 것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 외식 ◉
미련한 다섯 처녀가 기름을 준비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나와 있는가에 마음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 마음에 신랑이 없고, 따라서 신랑의 혼인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마음도 없기 때문에 기름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신랑을 기다린다며 그냥 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외식이다.
외식하는 자에 대한 비유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데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가 나온다.
24:51절에 보면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라고 말한다. 주인이 종에게 맡긴 일은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다.
만약 종이 주인이 올 때까지 그 일을 충실히 했다면 그것은 종의 마음에 주인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 마음에 주인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이 맡긴 일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에 주인이 없는 종은 동료를 때리고 술친구와 먹고 마신다. 힘이 있으면 그 힘을 과시하며 자기 즐거움을 위해 산다.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즉 그 마음에 주인이 없음으로 주인이 맡긴 일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고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와 먹고 마시며 자기 즐거움을 위해 산 것을 외식이라고 하신 것이다.
악한 종도 주인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주인이 맡긴 일을 할 것이다. 맡긴 일을 하지 않았다는 책망은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은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한 시각에 온 주인에 의해 매를 맞고 벌을 받은 것이다. 악한 종의 미련함은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생활을 즐기다가 주인이 오면 맡긴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에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자신들이 생각한 시간에 올 것이라고 착각했다. 신랑이 올 때 신랑을 맞이하기만 하면 할 일은 다 한 것으로 여겼기에 기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신랑이 오는 날과 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날과 때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한다.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랑이 오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자세이다. 이 기쁨이 우리에게 자리한다면 자연히 신랑을 맞이하는 자기 일에 마음을 두게 되고, 혹 기름이 부족할까 생각되어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자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부지런하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이 때론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부지런함을 내세워서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을 책망하게 된다. 이것이 동료를 때리는 것이며 그 속에 예수님을 기뻐하는 신자의 본질이 없는 것이기에 악한 것이며 미련한 것이고 외식자가 되는 것이다.
◉ 기름을 준비하는 마음 ◉
천국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말한다. 열 처녀가 신랑을 기다린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다섯은 기름을 준비했고 다섯은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국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는 문을 닫아 버린다. 인간적 관계나 인간의 도리와는 상관없이 기름 때문에 천국 안과 밖으로 구분되어 버린다.
우리 역시 신랑을 기다리는 입장에 있다. 중요한 것은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따로 준비해야 할 기름이 무엇이냐에 마음을 두기 보다는 기름을 준비하게 한 그 마음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기름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처녀로 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지혜로운 처녀가 기름을 준비하게 된 것은 신랑을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랑을 기다리는 자기 일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기름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종말을 살아가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을 기뻐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우리 마음이 예수님을 향해 있고, 예수님을 기뻐하는 마음이라면 예수님이 맡기신 일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을 기뻐하는 마음이 없이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외식일 수밖에 없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한 예수님의 책망이 그들의 외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철저했고 부지런 했다. 하지만 그들의 철저하고 부지런한 신앙생활의 그 내면에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없었다.
다만 바리새인으로, 사두개인으로 자신들의 명성에 걸 맞는 신앙생활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했다. 이것이 본질이 없고 형식만 있는 외식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천국은 닫혀 있다.
등불은 기름이 없으면 꺼질 수밖에 없고 꺼진 등불로는 신랑을 맞이할 수가 없다. 예수님을 기뻐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꺼진 등불과 같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뻐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확인함으로 가능하다. 예수님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럴 때 신자는 예수님이 나 같은 자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시고,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며 생명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로 인해 예수님을 기뻐하게 된다. 이 기쁨이 우리로 하여금 내 생활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맡기신 일에 마음을 두게 한다. 이것이 깨어있는 것이다.
결론:
은퇴 후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을 살기 위해서 미리 은퇴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우리의 인생인데 하물며 영원을 사는 문제를 놓고 우리가 너무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재림 신앙을 갖고 철저히 준비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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