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의 기록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윗의 이름이 나온 것으로 보아
다윗 시대 혹은 그 이후에 쓰인 것으로 보이며 저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룻기에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언급되는데 유대인들은 그 계절과 관련된 절기인 칠칠절이 되면
모두 회당에 모여서 룻기를 읽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룻기의 배경은 사사 시대이다.
사사기 21장 25절에 보면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즉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쓰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사사기는 암흑과 무질서와 영적 혼란의 시대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는 반면
룻기는 따뜻하고 이상하리만큼 단 한 명의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 스토리로만 쓰여있다.
사사 시대에 대표적인 사사기와 룻기가 이렇게 상반된 스토리를 다루고 있는 게 재미있다.
룻기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나오미 보아스 룻 이렇게 세 사람이다.
룻은 과부이고 이방 여인이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간 나그네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비와 동정에 의해서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이며 빈곤층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사람이다.
더군다나 늙은 과부인 시모까지 모셔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자원한 이방여인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을 계산하지 않고 오직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며 훌륭한 믿음을 가진 이방 여인이다.
사사기의 대부분의 스토리는 배교하고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진노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 반해
이방 여인 룻은 시어머님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스스로 자청하는 놀라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룻은 나오미를 위해 자손을 만들어 주기를 원했고 이런 룻을 보아스는 훌륭하게 생각했다.
결국 룻은 앨리멜렉의 자손을 이어주는 역할까지 감당했다.
룻을 통하여 결국 다윗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든 이스라엘인이든 차별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은혜 베푸심을 사사 시대에 룻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룻기는 너무나 유명한 책이고 무엇보다도 4장 밖에 되지 않는데도 스토리가 있는 책이라 쉽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첫 장에서부터 읽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로맨스 한편을 그리며 읽을 수 있는 아주 쉬운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가벼운 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1장에서 4장까지 읽다가 4장 마지막 18절에서 22절에 보면 다시 다윗의 계보가 나온다.
마지막 21-22절에 보면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도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본문에는 보아스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자녀가 있는지 없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보아스의 결혼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것은 "보아스가 오벳을 낳았다"라는 것이고 오벳은 다윗의 조상이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아스가 평범한 이스라엘 여인과 결혼을 해서 자손을 낳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이 믿음의 계보에 이방 여인 룻을 택하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과부였던 룻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라는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오시게 하는 이 다윗의 계보에 쓸데없는 이스라엘 선민의식에 차 있는 이스라엘 여인을 찾으신 게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시는 믿음의 여인을 택하셨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혈육으로 이은 계보가 아니라 믿음의 계보를 완성하시는 이 마지막 18절에서 22절로 묵직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마지막 절을 읽는 순간 "두둥"하며 가슴에 한방을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오늘 묵상의 포인트는 사실 생뚱맞은 곳에 있었다.
주인공이 아닌 지나가는 사람 여인 1,2,3과 같은 사람에게 큰 은혜를 받았다.
룻기 4장에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네 여인 1,2,3은 1장 19절에도 등장한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올 때도 이 여인들이 맞이했고 마지막 4장에서 이야기를 끝을 맺을 때도 이 여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룻과 보아스가 결혼을 하자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증인이 되어주고 그들의 결혼을 축복해 준다.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내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내게 상속자를 주사
내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베들레헴 성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14절에서 17절에 보면 여인들이 아들을 낳은 룻과 나오미를 보며 하나님께 찬송하며
놀랍게도 그 아이에게 이웃 여인들이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아이의 이름이 다윗의 조상 "오벳"이다. 오벳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는 나오미도 룻도 보아스도 아닌 여인들이었다.
나는 이 장면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찬송하던 백성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그 여인들은 부재중에 오실 예수님을 찬송한 중요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주인공이 룻이지만 주인공 못지않은 놀라운 감동을 주는 사람들은 여인들이었다.
나는 사실 어제오늘 이틀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
어제 아침에 갑자기 찾아온 등과 목의 마비 증상으로 응급실에 갔었다.
작년에도 6차례나 뇌출혈을 경험했기 때문에 출혈이 올 때 찾아오는 마비 증상을 잘 알고 있다.
어제 룻기를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하지를 못했었다.
그러나 병원에 있을 동안 응급실에서 못했지만 입원실로 배정받아 갔을 때 비로소 조용한 혼자만의 공간이 생겨서
룻기를 읽고 찬양도 하고 소리 내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파 본 사람은 그 고통이 어떠함을 알기에 알면 더 무서운 법이다.
눈물이 나고 마치 깜깜한 우주에 혼자 표류하고 있는 느낌도 들고....
우주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지구가 나와 상관없는 별 나라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힘 들었다.
하지만 순간 뒤를 돌아보니 "아! 맞다. 이 우주도 하나님이 만드셨지. 그러면 하나님이 만드신 공간에 나는 존재하는 거야.
나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룻기를 읽는데 그동안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던 룻기에 기록되어 있는 동네 사는 이름 모를 여인들이 들어왔다.
이 세상에 주인공은 아니지만 이 여인들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인들....
나오미의 노후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여인들.... 나오미에게 희망이 생긴 것을 함께 축하해 주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내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멀리 떠나 이 척박한 미국에서 살면서 외롭고 상처받은 일도 많았지만 아픈 순간 돌아보니
내 주위에 나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 주고 나의 고난을 함께 슬퍼하고 기도해 주는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기도 부탁을 드렸다.
룻기에서 주인공은 룻과 보아스와 나오미만은 아니었다.
전심으로 기뻐하며 찬양하는 이름 모를 여인들 동네 사람들 장로들 그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어제, 오늘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힘든 그 순간마다
눈 오늘날 길거리에서 따뜻한 집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행복한 가정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길 잃은 강아지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이 심어주는 마음이다.
나에게는 가족이 있고 나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 주는 룻기의 등장하는 여인들과 같은 이웃이 있다.
어쩜 이렇게 기막힌 타이밍에 하나님은 룻기를 병원에서 읽게 하셨을까?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기막힌 타이밍의 순간이었다.
평생 병실에서 룻기를 읽던 순간을 잊어버리지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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