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는 사사기 말부터 다윗 말까지 다루고 있다.
선지자 나단과 갓이 썼다고 말하는 주장도 있으나 그 가능성은 아주 낮다.
시무엘하 1장 18절에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라는 구절에 보면 분명히 야살의 책과 같은 자료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무엘하 8장 16절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라는 구절을 보면 다윗 시대에는 사관이 썼던 기록이 있고
역대상에 사무엘 나단 갓이 다윗의 행적을 기록한 자료들이 있다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역사 기록 보관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축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익명의 저자가 다윗 시대를 지난 후에 이런 자료들을 모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무엘하는 다윗에 관한 스토리이다.
1장에서 6장까지는 다윗 왕의 등극을 다루고 있고 7장의 다윗의 언약 8장에서 24장은 다윗의 쇠퇴를 다루고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30세에 옹립되어 B.C 1010년에서 970년까지 40년간 통치한다.
1장에서 24장 전체 말씀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말씀은 7장의 다윗의 언약이다.
이 다윗의 언약은 구약 전체에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 이어지는 다윗의 언약은 영원한 다윗의 왕조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말한다.
오늘은 1장에서 9장을 묵상했다.
1장에서 6장은 다윗 왕이 등극하는 기록이 쓰여졌고 7장에서 다윗의 언약을 다루고 있다고 앞에서 설명했다.
사무엘상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고 난 후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을 죽이고 시글락에 돌아와 이틀을 더 머물렀다.
이때 아말렉 청년이 다윗을 찾아와서 서울 왕이 썼던 왕관과 팔고리를 다윗에게 가져온다.
아말렉 청년은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자신의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사울을 급히 따르는데
사울이 뒤를 볼아 보고 그를 부르기에 달려갔더니 사울 자신이 고통 중에 있으니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해서
그가 사울을 죽이고 왕관과 팔고리를 다윗에게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사울의 죽음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그 청년이 사울의 죽음을 목격하기는 했지만 죽여 달라고 했을 때 두려워서 죽이지 못했고 사울은 스스로 자살을 했다.
그러나 다윗에게 왕관과 팔고리를 갖다주면 다윗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아말렉 청년을 죽이며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기록한 것은 사울의 죽음에 다윗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다윗의 왕국이 쟁탈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되었다.
사울의 남아 있는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었고 다윗은 유다의 왕이 먼저 되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심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 기브온에 이르고 스루야에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심복들도 나와
기브온 못 가에서 그들을 만나 양쪽에 서서 전쟁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윗과 이스보셋은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요압이 이끈 다윗의 심복 중에 19명과 아사헬이 사라졌고
다윗의 심복들이 베냐민과 아브넬에 속한 자들을 쳐서 360명을 죽였다.
즉, 다윗의 심복들이 이겼다. 죽은 19명 중 아사헬은 요압의 형제이다.
이 아사헬은 발은 들 노루같이 빠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아가다가 아브넬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요압은 아브넬을 죽일 결심을 한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이 다윗에게 승리할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이스보셋을 배반한다.
다윗에게 전령을 보내서 언약 맺기를 시도한다.
다윗은 아브넬에게 사울의 딸 미갈을 데려오는 조건을 걸고 아브넬은 베냐민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윗의 협상자가 된다.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아브넬이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말하려고 헤브론으로 가니라" (3장 19절)
즉, 다윗과 이스라엘과 베냐민과 관계에서 아브넬이 협상을 하는 것이다.
아브넬이 협상에 성공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을 뒤늦게 안 요압은
다윗이 아브넬을 살려 보내준 것을 알고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복수를 한다.
이 사실을 다윗이 듣고 아브넬과 요압의 전쟁도 몰랐고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도 몰랐기에
32장 28-29절에 보면 자신이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이 없음을 선포하며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하며 저주한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 죽음에 왕이 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5장에서 다윗은 드디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6장에서는 하나님의 궤가 다윗성으로 옮겨지는 사건이 나오고 7장에서는 다윗 왕국에 대한 언약이 나온다.
6장에 언약궤를 옮길 때 6장 2절에서 보면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처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 오려 했으나 갑자기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언약궤를 운반하는 방법인 사람이 메어 올려고 했으나 왜 그 방법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수레를 몰고 오다가
궤가 흔들려 웃사가 잡음으로 그 자리에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래서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오늘날까지 부르고 있다.
그리고 결국은 언약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고 백성들과 다윗은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러나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려고 돌아왔을 때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비난하자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는 저주를 받게 된다.
미갈은 첫 번째 아내였고 여러 번 다윗이 죽음의 위기를 당했을 때 도와준 아내였다.
그러나 사울의 가문이 모두 멸절하고 자신도 다른 남자의 아내로 가 있다가 다시 다윗의 품으로 온
어떻게 보면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여인이다.
그러나 미갈은 하나님을 모르고 구경꾼처럼 창문에서 바라보는 그런 존재였다.
백성들도 춤을 추며 기뻐하며 언약궤를 맞이하는 이 순간을 함께 기뻐하지 않았다.
다윗은 언약궤가 오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하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 떡과 고기와 건포도를 나누어주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축복하려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미갈이 그 마음을 깨어버린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눈치나 인격이라도 갖추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가족을 다 잃고 재산도 빼앗기고 두 번째 남편도 잃어버리고 불쌍한 마음도 들지만
다윗에게 방탕한 자 염치없이 즉 주책맞는 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왕으로 있을 때 다윗이 눈칫밥이나 먹고 쫓겨 다녔던 하찮은 존재로만 생각했지
달라진 다윗을 왕으로 보지 못하는 미갈의 그 마음이 보인다.
만약 요나단처럼 다윗의 가치를 알아보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 부으신 것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미갈은 왕이 다윗을 하찮게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망자였던 다윗에게 갔을 것이다.
오히려 죄인의 딸 자신을 죽이지 않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을 왕후의 자리에 불러 주심을 감사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있었더라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미갈의 삶에 연민이 가지만 자기가 만든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미갈을 통해 느낀 것도 있고 언약을 이루시는 약속의 하나님도 느꼈고 전쟁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7장 11-12절 말씀 중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아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내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해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네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이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오늘 말씀 대부분이 전쟁, 죽음을 다루다가 이 말씀을 읽으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하나님이 나를 쉬게 하고 나를 위하여 집을 짓고 무엇보다 나의 수한이 차서 내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나의 자녀들을 나에 뒤에 세워 하나님 나라가 견고하게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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