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사무엘상 28장에서 31장 묵상

차작가 2023. 9. 22. 12:27

28장에서 31장에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나온다.

하나는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만나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말렉을 치며 위기를 넘기고 사울과 그 아들들은 전쟁에서 죽는 사건이다.

28장에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만나는 사건은 아주 논란이 많은 사건이다.

시무엘이 죽자 사울은 더욱더 불안했다.

사무엘이 사사로 있는 동안은 이스라엘이 평화로웠으나 사무엘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도 불안해했다.

왜냐하면 사울은 점점 하나님을 떠났고 인생의 대부분을 다윗을 죽이는 것에 급급했기 때문에 판단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울은 그런 백성들의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혹시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울이 여호와께 물어도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들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마침 블레셋 사람들이 수넵에 진을 치고 사울은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브아 진치고 있을 때

사울이 블레셋의 많은 군대들을 보고 두려워서 크게 떨렸다.

그래서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 엔돌은 블레셋 사람들이 진을 친 수넵을 지나가야 했으므로 아무도 모르게 밤에 그 여인에게 찾아갔다.

그곳에서 사울은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했고 그 신접한 여인은 그가 사울임을 알았다.

두려워하는 그 여인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 일로 벌을 당하지 않게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런 맹세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울의 분별력은 무너져 있던 것이다.

신접한 여인이 땅에서 영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하자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물었고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겉옷을 입었다고 말한다.

사무엘로 지칭된 영에게 사울은 하나님은 자신을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어떻게 자신이 행해야 될지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악영은 그의 나라를 너의 손에서 떼어 다윗에게 준다고 말했고 사울은 심히 고통스러워했다.

심지어는 신접한 여인이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밤에 돌아가는 사건이 28장 전체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상반된 학자들의 의견들이 있다. 한 의견은 하나님이 한시적으로 사무엘을 보내셨다는 의견이고

다른 의견은 악한 영이 사무엘을 가장했다는 의견이다.

여기서 나의 생각은 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잠시 허락했다는 것은 더 큰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악한 영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한시적으로 사무엘을 보내셨다는 논리로 풀면

현재 일어나는 영의 일들이 굉장한 논란의 소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분별하는 것은 개인의 차가 있기 때문에 증명할 길도 없다.

사무엘 사사 시대에 일어난 단 한 번의 이 사건이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논란을 낳고 있다는 것은

만약 그것을 허용한다면 지금은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보면

누가복음 16장 25절에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 없게 하였느니라"

"자기의 형제 다섯이 있으나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하니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고난을 받지 아니하니라 하셨다"

즉 천국에서 지옥으로 갈 수 없다. 또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한다.

또 지옥은 이 말씀에 근거하면 구렁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구렁떵이는 땅속에 있다.

그리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에 이런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사무엘의 영이 땅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구렁텅이 즉, 죽음에 속한 곳이고 악한 영을 뜻한다.

그리고 야곱이 만난 천사나 아브라함이 영접한 천사 또 여호수아가 만난 군대장관 천사 등 구약에서 등장하는 많은 천사들이 있다.

그 천사들은 모두 보이는 존재였다. 그러나 사울은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서 악한 영의 장난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학자도 목사도 아니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나의 생각을 나눌 뿐이다.

어떤 의견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묵상 포인트는 사울이 의지하는 악한 영의 세계이다.

사울이 처음 사무엘을 만났을 때는 성막에서 만났다.

이미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이 온다는 것을 말씀하셨으므로 사무엘은 사울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했다.

사울은 사무엘과 함께 성막에서 음식을 나누고 심지어는 예언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도 예언가이냐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불손종의 결과로 악한 영이 사울을 지배했고 늘 악령의 지배를 받고 살게 되었다,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준 것도 악한 영이다.

그리고 전쟁 앞에 두려움을 준 것도 악한 영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떠났고 다윗에게 기름 부으시고 자신을 대신할 왕이 된다는 것도 사울은 알고 있다.

그것이 사울을 두렵게 한 가장 큰 이유이다.

그 약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은 악한 영이다.

악령은 그 약점을 잡고 흔들었다.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을 때도 악령이 동행했다.

자신은 눈으로 보지 못한 악령이지만 악령은 늘 사울과 함께 했다.

다만 악령은 신접한 여인에게 사무엘을 가장해 자신을 보여 줬고 그 모습을 여인을 통해 듣자 스스로 사무엘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다윗의 기름부음과 사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악령이 귀신같이 맞추는 것을 보고

어리석게도 사무엘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악령은 사람의 약점을 잡고 절대로 놓지 않는다.

이렇게 사울은 스스로 자멸한 것이다.

만약 사울이 처음 불순종했을 때 회개했더라면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었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회개했더라면

사무엘이 죽었을 때에라도 회개했더라면 다윗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울을 용서했을 때 회개했더라면

악령은 떠나갔고 하나님은 분명히 용서해 주셨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마지막 전쟁을 앞두고 자신이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서도 사울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이 허무한 인생은 회개를 통해서 다시 영광의 인생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나도 이게 아닌데 하며 기회를 번번이 놓칠 때가 많이 있다.

그런 순간마다 어쩔 때는 그냥 넘어가시겠지 할 때도 있고 이건 아주 사소한 죄인 데라고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 앞에 죄일 뿐이다.

절대로 사울과 같이 돌이킬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무엘상의 마지막 절은 전쟁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이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다윗은 곤란한 위치에 처해졌다.

왜냐하면 블레셋 지역에 조그마한 시글락 성읍에 사울을 피해 도피해 있던 다윗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함께 할 수도 없는 그런 난감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믿지 못함으로 그 전쟁을 피할 수 있게 하셨다.

사울은 이 전쟁으로 31장 2절과 같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이렇게 길보아 산에서 세 아들과 사울은 죽었고 머리도 베이고 갑옷도 벗겨지고

심지어 이방 신당과 블레셋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것을 블레셋 땅의 사방으로 보내졌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들을 벧산 성벽에서 내려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그의 뼈를 가져다가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7일 동안 금식하였더라고 31장 13절 마지막 절에 기록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시체 훼손으로 인해 매장하지 못하고 화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다윗은 이 곤란했던 전쟁을 피해 그들이 머물던 시글락 성읍으로 돌아가자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에 사는 주민들을 모두 잡아가고 성읍을 불살랐음을 보았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어서

여호와께 물어 아말렉을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라고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은 추격 중에 버려진 애굽 용병을 만나게 하셨고 그를 도와주어 아말렉 사람들을 찾게 하셔서

그들이 약탈한 모든 것들을 찾아왔다.

30장 20,21절에 보면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이 또 양 떼와 소떼를 다 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위의 전리품이라" 이렇게 사울과 다윗은 이 전쟁으로 운명이 갈리게 된다.

다윗은 크게 다급하였으나 하나님께 기도해 전쟁에 승리하고 잃어버린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승리자의 전리품같이 양 떼와 소떼를 되 찾아왔다.

반면에 사울은 크게 두려워했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무당을 찾았다.

그 결과 갑옷은 벗겨지고 머리는 베이고 성벽에 매달리는 결과를 낳았다.

사울은 왕에서 내려지고 다윗은 승전가를 부르며 전리품을 갖고 다윗의 왕국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30장과 31장의 전쟁은 사무엘 상의 핵심이고 주제이다.

핵심 단어는 "사람은 외모를 보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느니라"이다.

그리고 사무엘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하나님은 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은 죄로 인하여 온전히 하나님을 그 중심에 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한시적으로 왕의 모형을 보여주었지만 우리는 다윗 또한 완벽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사무엘 상에서 하시는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이 완벽하시고 진정한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심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백성들이 왕을 구했을 때

"사무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 하시는 말씀이 생각이 난다.

결국 가장 완전한 왕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죄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