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용기"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유다 왕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정권을 잡는다.
아달랴는 자신의 아들이 죽자 모든 왕자를 죽여 여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 요아스는 유모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손에 성전에서 몰래 자라게 된다.
23장 1절에서 "제칠 년에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라는 말씀을 읽는데
갑자기 나에게 지금 용기가 필요한 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호야다의 용기로 시작한 반역이 다시 다윗의 혈통을 이어 요아스가 왕이되고 성전 정화, 개혁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남유다 왕국의 회복을 가져왔다.
옳은 줄 알지만 많은 적들 앞에서 이런 용기를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건 아달랴 입장에선 반역이고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싸움과 같은 것이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히 옳은 일이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용기"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계속 성경을 읽어 가는데 28장 선지자 오뎃의 이야기가 나왔다.
28:9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육하고
28:10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28:11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의 형제들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
유다 왕 아하스가 왕일 때 일이다.
그는 다윗과 같지 않고 바알을 섬기고 작은 산이나 푸른 나무에 분향하는 정직하지 않은 왕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아람 왕에게 넘겨 많은 유다 백성들이 아람에게 잡혀 가게 하셨고 아람 왕이 유다 사람을 이스라엘에게 넘기게 되었다.
비록 하나님이 아람 왕 손에 유다를 넘겼지만 같은 형제인 이스라엘이 그들을 사로 잡아가서 노략하고
종으로 사마리아로 데려가는 걸 원치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형제이고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지자 오뎃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옳은 말을 하는 오뎃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듣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노략한 것들을 모두 돌려주고
상처 난 사람들은 치료해 주고 옷이 없는 사람은 옷을 입혀주고 신이 없는 사람은 신을 신겨 주고
약한 자는 나귀에 태워 모두 여리고로 돌려보낸다.
이렇듯 바른 말은 관계를 회복시키고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걸 막아 주는 것이다.
오뎃 선지자도 여호야다도 용기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세상은 대세를 따라가는데 아니라고 말하며 반대편에 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용기라는 말이 나에게 가슴이 남는다는 건 나도 이런 용기가 필요할 순간이 많다는 의미이고
용기를 내지 못한 순간들이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지나고 생각하니 상처 주기 싫어서라고 합리화해서 말하지만 다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
괜히 잘난척하는 건 아닐까.. 또는 괜히 튀지는 않을까.. 등등
아닌 것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걸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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