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3 - 역대 상 21장에서 29장 묵상

차작가 2024. 9. 5. 11:18

다윗의 인구조사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칠만 명이 죽는다.

이것은 1절에서 말하듯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 하게 하니라"

다윗의 마음에 조그마한 틈이 생기자 사탄이 충동을 했다.

다윗만의 틈이 아니었음을 앞 구절에서 찾을 수가 있다.

이스라엘을 대적하여...라는 문장에서 충분히 추측할 수가 있다.

승승장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도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왕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였다.

그만큼 리더의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다윗보다는 요압의 입장에서 보니

이 충동은 비단 다윗만을 향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탄은 요압 장군이 반복적으로 다윗의 명령에 불순종하자 요압에게도 이것은 시험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동일한 사건이 다윗에게는 교만이었고 요압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순종이었다는 의미이다.

21: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 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압은 이 사건 전에도 여러 번 다윗의 명령에 불순종한 경험이 있었다.

하나님은 요압에게도 하시는 말씀이 있다는 걸 느꼈다.

때로는 시험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찬스가 되는 것이다.

요압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인구조사를 했다.

그러나 온전한 순종은 아니었다.

21: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 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21: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21: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요압의 입장에서 보면 나도 순종하기 힘든 명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문득 과거에 한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담임 목사님께서 몽골로 단기 선교를 가시면서 담임 목사님으로 아직 안수 받지 않는 전도사님을

우리 교회에 담임 목사로 세우는 일이 있었다.

그 전도사님은 우리 교회에 집사님이시며 대학교수님이셨고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시던 분이셨다.

교인들에게 존중받고 아무 문제가 없어서 모두 찬성을 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우리 남편만 반대를 했었다.

이유는 원칙이 담임 목사는 안수 받은 목사로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수의 설득과 목사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할 수 없이 그 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목사님이 선교 가시고 난 일 년 뒤에 전도사님의 태도가 변하고 이단 시비가 불거져서 교회가 반으로 나뉘는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는 나의 신앙생활 중 교회에서 겪었던 여러 일들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전도사님을 따라갔던 지체들은 우리를 피했고 결국은 성도의 대부분은 떠났고 여러운 시간 교회에 우리 가정이 남게 되었다.

결국은 우리의 생각이 옳았지만 다수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결과는 상처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런 문제들이 있다면 순종하는 게 옳은가 불순종이 옳은가 참 판단이 어려운 것이다.

이 사건은 참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어렵고 힘든 순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그 당시는 29살이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지만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좀 더 끝까지 반대를 했었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진행이 되면 담임 목사님이 만약 문제가 생기면 사임하는 걸로 책임을 지시게 하는 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 이후론 교회가 많이 침체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요압도 이런 맥락에서 적용한다면 최선을 다해 다윗 왕에게 조언을 해도 안된다면

나중에 하나님이 인구조사 문제로 벌하신다면 그 책임을 왕이 홀로 지는 걸로

맹세하게 하면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었을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그랬다면 벌의 3가지 종류 중 다른 걸 선택할 확률도 있고 다윗 스스로 왕위를 걸고 인구조사를 했으니

벌의 종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한국에서 섬기던 교회에서 잘못된 사역자를 세우고 난 뒤

아직도 이단 문제가 그 사건으로 인해 많은 지체들이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여전히 두 목사님은 한동네에서 사역을 같이 하고 계시다.

학생 교회라 29살도 어른에 속했던 교회에선 책임을 질 만한 리더라곤 두 사역자 뿐이었는데 모두 책임은 지지 않았다.

서로를 비난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말씀에서 벗어나면 따르지 않는 게 옳다는 생각은 있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죄를 짓는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위의 순종이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 말씀의 권위의 엄중함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안된다면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니 왕의 권위에 순종하고 레위와 베냐민까지 빼지 말고 바르게 조사를 하는 게 순종이다.

이것은 요압에게 하나님이 시험을 허락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순종이 최선이라는 어려운 결론을 내려본다.